
매거진T, 현장습격 | <윤도현의 러브레터> 고고 2008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view.php?mm=003001000&article_id=48856
최근에 보낸 그 어느 시간보다도 즐겁고, 신나고, 행복해서 까무러칠 것 같았던 한 때, 9월 23일 러브레터 녹화 공연. 영화 [고고70]의 멤버들 데블스가 나온다는 말만 듣고, 오로지 홍광호를 보겠다고 한숨에 달려갔다. 녹화 당일, S 아저씨에게 슬쩍 문자로 [초대권 없이 러브레터 공연 보러 갈 수 있나요. 제가 완전 빠진 남정네가 나오는데...] 하고 여쭈었더니, 표 구했으니 녹화 시간 맞춰서 오라고 바로 연락이 왔더랬다. (할렐루야)
무리수를 두고 감행한 여의도행. 그래도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KBS홀에서 S 아저씨를 만나 표 전해받고, 입장 순서대로 줄서서 십여분 먼저 도착해있던 친구가 저녁거리로 사온 삼각김밥과 닭꼬치를 허겁지겁 먹는다. 한심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공연장으로 들어서니 별세계. 콘서트 무대는 또 굉장히 오랜만이라, 눈이 멀 것처럼 찬란하게 꽂아내리는 색색의 조명에 가슴이 설렌다. 아름답다.
그리고, [데블스]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라. 종합선물세트처럼 쟁쟁한 가수들이 한데 모인 무대에서도 단연 독보적이다. 이 사람들, 두 번째 게스트로 나와서는 무대와 객석을 콘서트 막공 분위기로 만들어버리고 떠나버리는데야, 허, 이것 참... 폭발하는 무대와 열광하는 객석과 끊이지 않는 앵콜과 환호... 조승우의 무시무시한 무대 장악력도 감탄스럽거니와 홍광호의 그 매력이라니... 머리를 요래요래 틱틱, 상체를 조래조래 흔들, 하며 색소폰 부는 그 귀여운 모습에 혼절할뻔 했다니까. ㅠㅠ 앞머리 푸슬푸슬하게 내리고 순진하고 수줍은 소년같은 상으로 있다가도, 순간순간 눈을 반짝이며 즐거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씩 웃으며 연주하는 그 모습에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으리요. 스포트라이트 받으며 색소폰 솔로 연주하는 대목에선 내가 괜히 뿌듯하고, 벅차고.

첫 세 곡 연주가 끝나고 자기소개를 하면서도, [데블스의 막내 홍광호입니다. 원래는 뮤지컬 배웁니다.]라며 단호하게 자기를 뮤지컬 배우로 소개하는데, 흐뭇하고 기특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고고70] 찍는 동안, 방준석 음악감독이 홍광호에게 꿈이 뭐냐 물었단다. 홍광호는 "뮤지컬 배우요."라고 대답했다고. 그러자 "너 뮤지컬 배우잖아...?"라고 되묻던 방 감독의 말에 '그런가' 하며 기분이 좋았다가 2초 후 머리에 총을 맞은 듯 멍해졌다던 에피소드가 떠올라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고한 신념, 지치지 않는 꿈을 지니고 있는 이 청년을 볼 때마다 벅차고 또 설렌다.
주변 신경 전혀 안 쓰고 친구와 함께 꺅꺅거리고, 흐느적흐느적 손뼉치고 춤추며, [데블스]의 무대를, 그 정수까지 맘껏 즐긴다. 그들에게 무대가 종교와 같다면, 그 무대에 서서 우리에게 신내림을 경헙케 해주는 그들의 존재야말로 우리에게 종교가 아닐까 싶어 가슴이 뛴다. 이 힘으로 또 내일을 살아가겠구나 싶었는데, 하룻밤 지나고 나자 신열같던 지난 밤은 마치 한여름밤의 꿈처럼 멀게만 느껴져서 하루종일 마음이 헛헛하다. 미칠 것처럼 신나고 행복하고 즐거웠던 그 순간을 보내고 나니 현실은 어쩌면 이리도 비루한지. 열두시 땡치고 호박으로 되돌아온 마차를 바라보는 신데렐라의 심경이 이런 것이었을까. 그래도 유리구두 한짝 쥐어들고는 지난 밤이 꿈이 아니었다고 안위할 수 있으니.
게다가 매거진T에선 내가 보냈던 광란의 시간을 되새김질할 수 있는 글과 사진을 이처럼 실어주다니, 고맙지 뭔가. (어찌 요즘은 연료 공급이 이다지도 가열차단 말인가!) 저들이 빈 객석을 향해 리허설을 마치고, 녹화가 진행되는 동안 무대 뒷편에서 대기하고 있었을, 내가 보지 못한 시간들이 마음에 다가와 잔잔한 파문이 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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