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홍광호/윤도현의 러브레터, 2008/10/02

소리- 2014. 7. 12. 09:31


매거진T, 현장습격 | <윤도현의 러브레터> 고고 2008
http://www.magazinet.co.kr/Articles/article_view.php?mm=003001000&article_id=48856

최근에 보낸 그 어느 시간보다도 즐겁고, 신나고, 행복해서 까무러칠 것 같았던 한 때, 9월 23일 러브레터 녹화 공연. 영화 [고고70]의 멤버들 데블스가 나온다는 말만 듣고, 오로지 홍광호를 보겠다고 한숨에 달려갔다. 녹화 당일, S 아저씨에게 슬쩍 문자로 [초대권 없이 러브레터 공연 보러 갈 수 있나요. 제가 완전 빠진 남정네가 나오는데...] 하고 여쭈었더니, 표 구했으니 녹화 시간 맞춰서 오라고 바로 연락이 왔더랬다. (할렐루야)

무리수를 두고 감행한 여의도행. 그래도 예상보다 일찍 도착한 KBS홀에서 S 아저씨를 만나 표 전해받고, 입장 순서대로 줄서서 십여분 먼저 도착해있던 친구가 저녁거리로 사온 삼각김밥과 닭꼬치를 허겁지겁 먹는다. 한심하기도 하고, 웃기기도 하고, 즐겁기도 하다. 

공연장으로 들어서니 별세계. 콘서트 무대는 또 굉장히 오랜만이라, 눈이 멀 것처럼 찬란하게 꽂아내리는 색색의 조명에 가슴이 설렌다. 아름답다. 

그리고, [데블스]는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더라. 종합선물세트처럼 쟁쟁한 가수들이 한데 모인 무대에서도 단연 독보적이다. 이 사람들, 두 번째 게스트로 나와서는 무대와 객석을 콘서트 막공 분위기로 만들어버리고 떠나버리는데야, 허, 이것 참... 폭발하는 무대와 열광하는 객석과 끊이지 않는 앵콜과 환호... 조승우의 무시무시한 무대 장악력도 감탄스럽거니와 홍광호의 그 매력이라니... 머리를 요래요래 틱틱, 상체를 조래조래 흔들, 하며 색소폰 부는 그 귀여운 모습에 혼절할뻔 했다니까. ㅠㅠ 앞머리 푸슬푸슬하게 내리고 순진하고 수줍은 소년같은 상으로 있다가도, 순간순간 눈을 반짝이며 즐거워 어쩔 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씩 웃으며 연주하는 그 모습에 어찌 반하지 않을 수 있으리요. 스포트라이트 받으며 색소폰 솔로 연주하는 대목에선 내가 괜히 뿌듯하고, 벅차고. 



첫 세 곡 연주가 끝나고 자기소개를 하면서도, [데블스의 막내 홍광호입니다. 원래는 뮤지컬 배웁니다.]라며 단호하게 자기를 뮤지컬 배우로 소개하는데, 흐뭇하고 기특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고고70] 찍는 동안, 방준석 음악감독이 홍광호에게 꿈이 뭐냐 물었단다. 홍광호는 "뮤지컬 배우요."라고 대답했다고. 그러자 "너 뮤지컬 배우잖아...?"라고 되묻던 방 감독의 말에 '그런가' 하며 기분이 좋았다가 2초 후 머리에 총을 맞은 듯 멍해졌다던 에피소드가 떠올라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 하고 있는 일에 대한 확고한 신념, 지치지 않는 꿈을 지니고 있는 이 청년을 볼 때마다 벅차고 또 설렌다. 

주변 신경 전혀 안 쓰고 친구와 함께 꺅꺅거리고, 흐느적흐느적 손뼉치고 춤추며, [데블스]의 무대를, 그 정수까지 맘껏 즐긴다. 그들에게 무대가 종교와 같다면, 그 무대에 서서 우리에게 신내림을 경헙케 해주는 그들의 존재야말로 우리에게 종교가 아닐까 싶어 가슴이 뛴다. 이 힘으로 또 내일을 살아가겠구나 싶었는데, 하룻밤 지나고 나자 신열같던 지난 밤은 마치 한여름밤의 꿈처럼 멀게만 느껴져서 하루종일 마음이 헛헛하다. 미칠 것처럼 신나고 행복하고 즐거웠던 그 순간을 보내고 나니 현실은 어쩌면 이리도 비루한지. 열두시 땡치고 호박으로 되돌아온 마차를 바라보는 신데렐라의 심경이 이런 것이었을까. 그래도 유리구두 한짝 쥐어들고는 지난 밤이 꿈이 아니었다고 안위할 수 있으니. 

게다가 매거진T에선 내가 보냈던 광란의 시간을 되새김질할 수 있는 글과 사진을 이처럼 실어주다니, 고맙지 뭔가. (어찌 요즘은 연료 공급이 이다지도 가열차단 말인가!) 저들이 빈 객석을 향해 리허설을 마치고, 녹화가 진행되는 동안 무대 뒷편에서 대기하고 있었을, 내가 보지 못한 시간들이 마음에 다가와 잔잔한 파문이 인다.
comment [4]
소리
081004  del
시사회로 미리 관람한 [고고70]이 만족스럽지 않았던 이유는, 아마도 이 날, [윤도현의 러브레터] 무대 위에서 이미 완결된 [데블스]를 이미 보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아, 다시 생각해도 참 즐거운 날이었다. 함께 해 준 동행도 탁월했고. :-)
081006  del
아마도 나도 무대위에서의 데블스를 먼저 보았다면 이 영화가 덜 좋았을지도? 오늘 영화보고왔는데, 난 엄청 좋았거든. 근데 그 영화 속의 무대가 만족스럽지 않았다면 무대가 얼마나 대단했다는거야..영화보면서도 러블리 덕분에 계속 홍광호에 집중하려고 했는데 비중은 좀 적더라. ^^ 그래도 마지막에 노래 부를때는 파워플했어. 
조승우도, 차승우도, 신민아도, 암튼 다들 진짜 신들린 거 같이 노래부르고 춤추고...영화 속의 공연보면서 코끝이 찡한 느낌은 정말 오랫만에 받았어. 라이브로 진짜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
소리
081007  del
네... 사실 전 영화 [고고70]은 거의 팬심으로 봤어요. ㅠㅠ 저도 언니가 느낀 것 같은 그런 찡함을 스크린을 통해서도 느낄 수 있었다면 정말 좋겠는데, 어째서 같은 영화를 봐도 비경제적이게 저는 감상이 이리 무미건조하냐구요. 근데 아무리 생각해도 실제 무대 위의 데블스가 너무나 끝장나게 좋았던 거라구요. 정말 너무, 너무, 좋았어요.
소리
081007  del
아... 그리고 홍광호의 노래를 들으시려면 사실 그 영화의 [그리운 건 너]로는 안됩니다요. 조연, 그것도 대사 별로 없는 데블스 막내로 나와서 비중은 작지만 존재감은 꽤 높지 않던가요? 전 홍광호밖에 안 보이더라구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