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 여행 중 가장 많이 만났던 주제는 '수태고지'였다. 못지 않게 반복되는 다른 주제들도 있었지만 가장 마음이 가는 주제이기도 했다. 특히 천사 가브리엘의 날개 색 배합은 천재적이다 싶을 정도로 멋져서 저런 색의 조합을 처음 생각한 사람은 누구이고, 또 어쩌면 저렇게 아름답게 변주시켰는지가 무척 궁금해졌다.
 제일 좋았던 건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어쩌면 이렇게 색이 고울까... 웹 이미지는 원색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토스카나의 전원 풍경을 배경으로 삼은 것도 마음에 들고, 곱디 고운 안젤리코의 프레스코화는 한없이 마음을 따뜻하게 하더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라는 주제마저 곱게 표현한 게 나는 어쩐지 참 좋았다. 가브리엘 천사의 날개 색은 그 어떤 수태고지보다도 아름다워서 자꾸자꾸 쳐다보게 되었다.

보티첼리의 수태고지는 가브리엘과 마리아의 구도, 마리아의 유연한 몸짓이 통상적이지 않아 마음에 들었다. 가브리엘과 마리아가 뒤집어 쓴 투명한 베일도 참 보티첼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태고지는 조금 심심했다. 역시 배경은 토스카나의 전원 풍경. 성경의 사건을 작가의 환경으로 끌어오는 작업이 흥미롭다.
 가장 납득이 가던 수태고지는 카라바지오 파라는 Matthias Stomer의 것이었다. 언제나 준비가 된 듯, 차분하고 공손하게 가브리엘을 맞는 마리아는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갑자기 천사라고 나타나서 성령 잉태를 알리는 그 상황이 나였다면 어리둥절하기만 할 것이다.
"누구삼?"이라고 하는 듯한 마리아의 표정이 심히 공감된다. 종교화를 세속화처럼 그려내는 카라바지오 파가 좋다. 조금 더 쉽게 이해가 된달까.
이번 여행에서는 집약적으로 교회 건축, 종교화를 접해서 금세 물려버리긴 했지만 문맹에게 더없이 소중했을 텍스트였을 종교화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었던 게 작은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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