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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맡의 책

위화, 허삼관 매혈기, 2006/04/02 갑작스레 의 이 부분이 떠올랐다. 딸기언니가 책을 한 번 대폭적으로 처분했을 때 얻어온 위화의 소설인데, 무척 즐겁게 읽었더랬다. 어느 날 세나가 좁은 하숙방에서 하루 묵게 되었던 날, 나는 이 책을 펼쳐 다음에 옮겨 적은 부분에서부터 약 두세페이지 이전부터 시작해 이 부분까지를 세나에게 읽어주었는데, 읽었던 부분을 다시 읽는데도 목이 메여서 중간에 멈추고 침을 거듭 삼키고 있을 때 세나는 눈물을 주룩주룩 흘리고 있었다. 지금 옆에 책이 있었다면, 발췌된 부분이 이해가 갈 수 있도록 훨씬 앞쪽에서부터 전체의 상황을 다 옮겨 적었을 테지만 인터넷 검색으로 찾을 수 있는 부분은 이 정도 뿐이라 다소 아쉽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이전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멀건 옥수수죽으로 끼니를 때우다가 아껴둔 돈으로 가족.. 더보기
Her Little Bookroom, 2005/02/09 내가 어릴 때 살았던 우리집에는 아주 작은 방이 하나 있었다. 우리는 그 방을 '작은 책 창고'라고 불렀다. 사실 그런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집의 방은 모두 서재라고 부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2층에 있는 우리들 어린이 방도 책으로 가득 차 있었고, 아래층 아버지의 서재도 책으로 꽉 차 있었다. 책은 그리고 식당의 벽을 메우고 어머니의 방과 계단을 올라가 여기저기 침실까지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당시 우리들에게는 책 없이 생활하는 것보다 옷을 입지 않고 사는 것이 더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였다. 책을 읽지 않는 것은 마치 음식을 먹지 않는 것처럼 이상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책이 가득 찬 온 집안의 어느 방보다도 책이 내 눈에 들어와 박힌 곳은 바로 '작은 책 창고'였다. 그것은 마치 꽃과 잡.. 더보기
진 웹스터, 키다리 아저씨 10월 10일 키다리 아저씨 아저씨는 미켈란젤로를 알고 계셔요? 이 사람은 중세기에 살았던 유명한 화가여요. 영문학을 하면 이 사람에 대한 것을 알게 되나 봐요. 제가 '이 사람이 대천사인가?'하고 말했기 때문에, 반 전체가 큰 소리로 웃었답니다. 대학교에서 성가신 일은, 무엇이든지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한 일로 여겨지는 것이어요. 가끔 곤란한 일을 당했기 때문에, 지금은 모르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면 잠자코 있다가 나중에 백과사전에서 찾아보고 있어요. 아저씨는 제 방이 어떻게 꾸며져 있는지 알고 싶지 않으셔요? 방의 벽이 황갈색으로 칠해져 있기 때문에, 노란 커튼과 쿠션과 마호가니(단향과에 딸린 늘푸른 큰키나무, 열대 식물로 북미 남동부 서인도 제도가 원산임. 목재는 적갈색으로 치밀하고 아름다워 가구재료로.. 더보기
한강, 어깨뼈, 2004/06/06 언제 읽어도 마음이 저릿해지는 건지 몰캉해지는 건지, 그러니까... 읽던 책을 그대로 엎어두고는 잠시 내가 속한 공간이 아닌 다른 어딘가로 멀리 시선을 두게 되는 그런 이야기, 나도 모르게 마음 속에 사라락 펼쳐지는 장면을 옮겨보았다. 사람의 몸에서 가장 정신적인 곳이 어디냐고 누군가 물은 적이 있지. 그때 나는 어깨라고 대답했어. 쓸쓸한 사람은 어깨만 보면 알 수 있잖아. 긴장하면 딱딱하게 굳고 두려우면 움츠러들고 당당할 때면 활짝 넓어지는 게 어깨지. 당신을 만나기 전, 목덜미와 어깨 사이가 쪼개질 듯 저려올 때면, 내 손으로 그 자리를 짚어 주무르면서 생각하곤 했어. 이 손이 햇빛이었으면, 나직한 오월의 바람 소리였으면. 처음으로 당신과 나란히 포도(鋪道)를 걸을 때였지. 길이 갑자기 좁아져서 우리.. 더보기
2007/01/15 필담저자구니오와 미나에,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출판사현대문학 | 2003-05-26 출간카테고리시/에세이책소개91584 / 267p책 소개 우리나라엔 아직 낯설지만 일본에서... "비에 지는 벚꽃은 무참합니다"라는 구절에 이르렀을 때, 저는 문득 언어가 과연 어디까지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 기온으로 포근해진 날씨에 철모르고 꽃봉오리를 마구 피워댄 벚꽃이 지난 며칠의 빗줄기에 지고 말았습니다. 눈송이처럼 물웅덩이를 부유하는 꽃잎을 보며 아름답지만 또한 서글프다고 여겼는데, 그래요, 무참하다는 표현이 참으로 옳습니다. 지친 마음과 곤두선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란 저같은 사람에겐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거울을 보고 짐짓 웃어보고 숨을 크게 내쉬어보아도 한 번 엇나가기 시작하면 제자리.. 더보기
피천득, 오월 오월은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다. 하얀 손가락에 끼어 있는 비취가락지다. 오월은 앵두와 어린 딸기의 달이요, 오월은 모란의 달이다. 그러나 오월은 무엇보다도 신록의 달이다. 전나무의 바늘잎도 연한 살결같이 보드랍다. 스물 한 살 나이였던 오월. 불현듯 밤차를 타고 피서지에 간 일이 있다. 해변가에 엎어져 있는 보트, 덧문이 닫혀 있는 별장들, 그러나 시월같이 쓸쓸하지는 않았다. 가까이 보이는 섬들이 생생한 색이었다. 得了愛情痛苦 득료애정통고 - 얻었도다, 애정의 고통을 失了愛情痛苦 실료애정통고 - 버렸도다, 애정의 고통을 젊어서 죽은 중국 시인의 이 글귀를 모래 위에 써 놓고 나는 죽지 않고 돌아왔다.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 더보기
벽지, 2007/07/14 불현듯,어린 시절 아끼고 아끼던 [아나스타샤의 비밀노트]의 한 장면이 머릿속을 스쳤어요. 정든 집을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에 부모님께 탑이 있는 집이 아니라면 절대로 이사할 수 없다는 까다로운 조건을 내건 아나스타샤에게 어느 날 부모님은 이사 갈 집을 보러 가자며 외출을 종용합니다.마지 못해 따라 나선 아나스타샤는 차 뒷자리에서 말 한 마디 없이 퉁퉁 불어서는 절대로 절대로 이사는 가지 않겠다고, 새 집 따위는 필요 없다고 되새기며 부모님과의 전면전을 불사하겠다는 결의까지 합니다. 그런데 이게 웬걸.도착해서 보니 부모님이 점찍어 둔 집에 탑이 있었던 거예요. 그러지 않으려고 애를 써보아도 탑을 본 그 순간 이미 아나스타샤는 그 집을 조금은 좋아하게 됩니다. 부모님이 일층의 거실과 부엌을 돌아보는 동안 아.. 더보기
먹는 것이야말로 인생이다, 2009/07/12 리틀 포레스트 (세트/전2권)저자이가라시 다이스케 지음출판사세미콜론 펴냄 | 2008-10-13 출간카테고리리틀 포레스트 (세트/전2권)책소개신비주의적인 스토리를 독특하고도 과감한 연출로 그려낸『마녀』로 ... 1권 뒷면에 큼지막하게 써 있는 문구이다. "먹는 것이야말로 인생이다!" 암요, 옳습니다. 재밌고 쉬운 것만 대강 골라 읽는 나의 요즘 독서 행태는 비난 받아 마땅하나, 여하튼 실정이 이렇다 보니 회사에서 읽는 보고서 외에 요즘 읽는 것이라곤 온통 만화책뿐. 뮤지컬 예습용으로 구입했던 바람의 나라 SE 1,2권에 이어 3권도 구입하였고ㅡ딱히 좋다거나 그런 건 아닌데 연작의 1권을 산 순간,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기분;;ㅡ시은언니네서 읽어보니 그렇게 좋을 수가 없던 리틀 포레스트 1,2권.. 더보기
회사 가기 싫은 이유, 2009/07/13 "아, 복수초가 폈다." "꽤 많이 폈네." "여기도." "...복수초는 독풀이야. 틀림없어." "...그래. 근데 너 왜 그래." "회사 상사가 먹는 차에 넣고 싶어서. 젠장할! 우리 회사 분위기가 지금 장난이 아냐! 멍청한 상사 하나가 봄에 다른 부서로 간다고 하더니 안 간대. 없어질 거라고 해서 다들 참고 있었는데 그게 폭발을 했지 뭐야. 그 멍청이는 자기 주변의 좁아터진 인간관계만 생각하는 사람이라서 조금만 반론해도 자기 잘난 척하면서 상대는 건방지다며 무시해버리거든.열심히 일하자고 하기 보다는 자신을 지키는데 혈안이 되어서는 회의를 하는 내내 사장한테 계속 아부나 해대고, 외부사람이 있는 자리에서 말야! 유능한 척 하면서 일을 척척 떠맡지만 결국 하나도 못하고. 그 일을 전부 주변 사람들에게 떠.. 더보기
아작아작 씹어 삼키고픈 글, 2009/12/01 나의 프로방스저자피터 메일 지음출판사효형출판 | 2008-02-20 출간카테고리시/에세이책소개진정한 휴가를 꿈꾸는 현대인들의 이상향, 프로방스 프로방스는 유... 일요일에만 일하는 젊은 아가씨가 납작한 바구니 쟁반을 갖고 나와 식탁 가운데에 놓았다. 열네 가지의 전채요리가 담겨 있었다. 아티초크 고갱이, 반죽을 입힌 작은 정어리, 향료가 든 타불레(중동식 야채 샐러드), 소금에 절여 크림 소스를 얹은 대구, 프렌치 소스를 친 버섯, 새끼 꼴뚜기, 타프나드, 신선한 토마토 소스에 적신 작은 양파, 샐러리와 이집트콩, 무와 방울토마토, 찬 홍합 등이었다. 이런 전채요리들이 잔뜩 담긴 쟁반 위에는 두껍게 썬 파테와 작은 오이, 올리브와 차가운 고추를 담은 접시가 절묘하게 균형을 잡고 놓여 있었다. 빵은 껍질이..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