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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맡의 책

2007/01/15



필담

저자
구니오와 미나에, 미즈무라 미나에 지음
출판사
현대문학 | 2003-05-26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91584 / 267p책 소개 우리나라엔 아직 낯설지만 일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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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에 지는 벚꽃은 무참합니다"라는 구절에 이르렀을 때, 저는 문득 언어가 과연 어디까지 아름다워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상 기온으로 포근해진 날씨에 철모르고 꽃봉오리를 마구 피워댄 벚꽃이 지난 며칠의 빗줄기에 지고 말았습니다. 눈송이처럼 물웅덩이를 부유하는 꽃잎을 보며 아름답지만 또한 서글프다고 여겼는데, 그래요, 무참하다는 표현이 참으로 옳습니다. 

지친 마음과 곤두선 감정을 드러내지 않기란 저같은 사람에겐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거울을 보고 짐짓 웃어보고 숨을 크게 내쉬어보아도 한 번 엇나가기 시작하면 제자리로 돌려 놓을 수 없는 것이 연약하기 짝이 없는 제 마음입니다. 쓰지 선생과 미즈무라씨의 필담은 그런 지친 마음에 정말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1년 6개월의 간격을 두고 교환한 편지를 반나절만에 읽어내리는 것은 불경한 짓이 아닌가도 싶었지만, 미즈무라씨의 표현을 빌자면 "...어쩐지 인간에 대해 무례하다는 인상을 줄 지 몰라도 누군가가 죽어가는 이야기를 자기는 느긋하게 침대에 드러누워 읽는 것이 바로 문학"인 것처럼 짧게는 몇 달 길게는 수년에 걸쳐 써내려간 글을 단숨에 해치울 수 있는 것이 바로 책이니까요. 

번역체여서인지 조금은 과장된 듯한 어투와 기지 넘치는 유머 덕분에 중간중간 많이 웃기도 했고, 어느 부분에서는 더할 나위 없는 공감에 가슴이 저릿하기도 했습니다. 잠시나마 지금이 아닌 먼 곳으로, 감히 '탐독'이라는 것을 할 수 있었던 시절로 돌아갈 수도 있었습니다. 요전번에 인용해주신 에밀리 브론테 이야기는 다시 읽어도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에밀리 브론테는 반 고흐만큼이나 굉장히 마음아프게 여겨지는 부분이 많습니다. 

두 저자는 서신을 교환하면서 문학이란 무엇인가, 글쓰기의 즐거움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돌아보았다고 하였지만, 그런 대단한 질문에 대한 답을 쉽게 구할 능력도 독자를 상정하고 글을 쓸 수 있는 재주도 없는 저는 다만, 실로 오랜만에 책읽기의 즐거움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에필로그, 그리고 옮긴이의 말까지 읽고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나자 오히려 허기가 찾아들어 밤새도록 문학 작품을 읽고 싶다는 욕망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두 저자가 언급했던 작품이라면 더욱 즐겁겠지요. 

책 읽는 즐거움, 지적인 독서가 아닌 영혼의 독서를 기억하게 해주셔서 너무나 감사드립니다. 덕분에 무척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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