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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산책

수태고지, 2013/05/11

피렌체 여행 중 가장 많이 만났던 주제는 '수태고지'였다. 
못지 않게 반복되는 다른 주제들도 있었지만 가장 마음이 가는 주제이기도 했다. 
특히 천사 가브리엘의 날개 색 배합은 천재적이다 싶을 정도로 멋져서 저런 색의 조합을 처음 생각한 사람은 누구이고, 또 어쩌면 저렇게 아름답게 변주시켰는지가 무척 궁금해졌다. 


제일 좋았던 건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 
어쩌면 이렇게 색이 고울까... 웹 이미지는 원색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다. 

토스카나의 전원 풍경을 배경으로 삼은 것도 마음에 들고, 
곱디 고운 안젤리코의 프레스코화는 한없이 마음을 따뜻하게 하더라. 
예수 그리스도의 고난이라는 주제마저 곱게 표현한 게 나는 어쩐지 참 좋았다.  
가브리엘 천사의 날개 색은 그 어떤 수태고지보다도 아름다워서 자꾸자꾸 쳐다보게 되었다. 


보티첼리의 수태고지는 가브리엘과 마리아의 구도, 마리아의 유연한 몸짓이 통상적이지 않아 마음에 들었다. 
가브리엘과 마리아가 뒤집어 쓴 투명한 베일도 참 보티첼리스럽다는 생각이 들었고. 


반면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수태고지는 조금 심심했다. 
역시 배경은 토스카나의 전원 풍경. 성경의 사건을 작가의 환경으로 끌어오는 작업이 흥미롭다. 


가장 납득이 가던 수태고지는 카라바지오 파라는 Matthias Stomer의 것이었다.
언제나 준비가 된 듯, 차분하고 공손하게 가브리엘을 맞는 마리아는 비현실적이지 않은가. 
갑자기 천사라고 나타나서 성령 잉태를 알리는 그 상황이 나였다면 어리둥절하기만 할 것이다. 

"누구삼?"이라고 하는 듯한 마리아의 표정이 심히 공감된다. 
종교화를 세속화처럼 그려내는 카라바지오 파가 좋다. 조금 더 쉽게 이해가 된달까. 

이번 여행에서는 집약적으로 교회 건축, 종교화를 접해서 금세 물려버리긴 했지만
문맹에게 더없이 소중했을 텍스트였을 종교화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었던 게 작은 수확이었다.

coolcat

05-20    

마지막 그림도 우피치에 있었나요? ㅎㅎ 표정 절묘하네요. 
저도 카르바지오파 좋아해요^^ 이 분의 다른 그림들도 궁금하네요. 

산마르코 수도원의 방방이 그려져 있는 프레스코화들은 너무도 아름다와서 
수도생활이 축복이었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그 어떤 미술관보다도 좋았던 기억을 소중히 안고 살아갑니다 ㅎㅎ

소리

05-20    

네, 마지막 그림 우피치에 있었어요. 폐관 시간 거의 다 되어서 허겁지겁 1층으로 돌아나오는 마지막 순간 즈음에 본 그림인데 좋았어요. 1층에 꽤 재밌는 그림이 있어서 사진 찍어온 게 몇 개 있는데요. ^^ 마침 제가 간 때가 백야 행사라 조금 기다리긴 했지만 무료로 밤의 박물관을 다녀올 수 있어서 좋았답니다. 

산 마르코 수도원은 방마다 벽화 하나 그려줄 생각을 한 그 누군가(수도원장이었을까요?)의 센스에 탄복했고, 그 공간 너무 좋았는데 내부 촬영이 금지 되어서 못 찍어온 게 좀 아쉬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