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물의 향유자이자 소비자로서의 위치는 종종 열등감을 느끼게 한다. 창작자에 대한 선망은 그 열등감의 대칭축. 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그렇게라도 향유할 수 있다는 것, 이토록 현현히 보고 듣고 느낄 수 있는 것, 그것만으로도 감동이 된다.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의 전석 매진. 아마 그 곳엔 내가 직간접적으로 아는 많은 사람이 함께 숨죽이고 환호하였을 것이다. 객석에서 5년간 연락이 끊겼던 ㅇ님과 조우했던 것을 비롯, 비록 마주치진 않았어도 그 곳에 있으리라 여겨지는 사람들이 무수히 머릿속을 스쳤다.
저녁을 무척 배불리 먹었고, 단차 없는 앞좌석엔 앉은 키가 큰 관객이 있었고, 뜬금없이 선준도령이 번개처럼 떠오르기도 했기에,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순간들이 분명 있었다. 그럼에도, 세 악기, 세 주자가 구축하는 각자의 견고한 세계가 맞물리고 흩어지고 또 교차되며 마음을 쥐었다 놓았다 쓰다듬었다. 이 세 분의 노장들은 과히 거장이었다가, 벗들이었다가, 천진하고 티없는 아이였다가, 악동이었다가 했다. '악기를 연주한다'는 표현은 적합치 않다. 제 몸을 다루는 것보다 더 능숙하고 자유로우며 거침없는 태도로 무섭게 집중하고 교감하시더라. 어느 대목에선 농도 짙은 연애장면을 보는 느낌마저. 그 섬세한 소리, 절망하고 환희하게 하는 선율, 한참을 공중에 맴돌던 음. 끝까지, 한참을 맴도는 음까지 고이 담고 싶은데, 터져나오는 박수소리로 채 잡아두지 못한 아쉬움.
1열을 사수했더라면, 옆자리 청년이 자꾸 맨발을 들이밀지 않았더라면, 마지막에 사람들이 사진을 찍지 않았더라면, 쟈렛옹이 저주의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앵콜곡이 한 곡 정도 더 있었더라면... 아쉬움은 있지만, 모처럼 충만하던 시간.
공연뿐 아니라 공연 전후의 먹거리가 만족을 더해줬다. 입에 사르르 녹던 초밥은 황홀했고, 비좁아 등을 맞대고 부딪혀야 하는 지경이지만 가을밤의 뜨거운 정종 한 잔도 운치있었다.
이런 날의 기록은 짧게라도 남겨두는 게 옳겠다. 그토록 섬세했던 음들도 너무 빨리 잊고 싶지 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