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중극 [돈 주앙] 이후, 팬텀의 지하동굴로 끌려온 크리스틴. 억지로 웨딩드레스에 면사포까지 씌워진 크리스틴을 구출하기 위해 달려온 라울. 이 세 사람이 격렬하게 맞서는 넘버인 [마지막 은신처 Final Lair] 이후, 다 잊으라며 라울과 크리스틴을 떠나보내는 팬텀. 원숭이 오르골에 맞춰 [마스커레이드 Masquerade]를 읊조리는 팬텀에게 다시 나타난 크리스틴. 일말의 희망으로 그녀를 붙들고 사랑을 고백하는 팬텀에게 반지를 돌려주고 다시 돌아가는 그녀.
이 흐름을 따라갈 때마다 늘 반지를 돌려주러 굳이 다시 돌아오는 크리스틴이라는 대목에서 김이 새고 말았다. 게다가 그 다음으로 이어지는 장면이 뭐냐면, 한없이 무너지며 괴로워하는 팬텀과 조각배 저어가며 '사랑, 바램은 그것 뿐'이라고 세레나데 불러대는 크리스틴과 라울의 대비란 말이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ㄲ님 말씀마따나 '크리스틴... 저, 저년이???' 하는 심정이 될 수 밖에.
그런데, 이 날 보았던 공연의 이 장면에서는 크리스틴(최현주씨)이 그저 왔다 가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걸, 반지를 돌려주면서 저도 몹시 슬퍼하고 또 괴로워하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정확히 어떤 종류의 감정이었는지 잘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낯선 감정 때문에 이 장면이 그렇게 맥락없는 것으로 여겨지지도, 크리스틴이 밉게 여겨지지도 않았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김소현씨의 이런 인터뷰 기사를 뒤늦게 읽었다.
“전 크리스틴이 팬텀을 사랑했다고 생각해요. 아빠가 보내준 음악의 천사로 믿었고, 실제 얼굴만 빼면 아주 매혹적인 존재니까요. 크리스틴이 팬텀을 떠난 건 흉측한 얼굴 탓이 아니에요. 외모 콤플렉스에 사로잡혀서 가면 뒤에 숨어 거칠고 왜곡된 삶을 사는 모습 때문이에요. 팬텀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들었을 땐 이미 늦었던 거죠. 크리스틴이 나중에 반지를 빼주고 떠나는 것도 자신을 기억해달라는 의미로 전 해석했어요.”
아, 하마터면 눈물이 날 뻔 했다. 낯설게 다가왔던 그 날 그 장면에서의 감정이 저런 것이었을 수 있겠구나 싶었다. 모든 것이 변해버렸고, 돌이킬 수 없는 순간을 맞아버렸지만,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다 잊고 찬란한 낮으로 한걸음에 달음박질할 수 없었던 마음이라면, 크리스틴을 더 이상 미워하지 않아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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