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길을 지나던 중이었소. 길가 담벼락 너머로 막 피어나던 목련이 내게 말을 걸었소.
아프지 마라, 아프지 마라
내가 아팠던 건지 아닌 건지는 잘 모르오. 다만 목련이 나에게 그렇게 말했다는 것 뿐. 햇살에 눈을 찌푸린 내가 찌푸린 얼굴로 목련을 올려다 보았을 때
세상에, 세상에, 세상에
목련은 막 꽃봉오리를 밀어내고 있는 중이었소. 세상에, 이 세상에, 꽃을 피어내려 안간힘을 쓰는 목련보다 더 아픈 것이 어디 있단 말이오.
그런데도 나더러 아프지 말라 하더이다. 자기가 더 아프면서. 목련이 내게 주는 그게 무엇이오. 그 아픈 목련이 내게 하는 위로의 말이 도대체 무엇이건데 내 마음이 이렇게 따듯해지더냔 말이오.
ㅡ 박수진 作, 연극 <줄리에게 박수를>
+ 이삿짐을 싸다 발견한 초록색 프로그램북. 풋풋한 느낌은 있었어도, 이런 이야기는 이미 많이 하지 않았나 싶은 작품이었는데, 자칫 작위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는 저 대사는 그래도 분명 사람 마음을 꾹 눌러주는 효과가 있었다.
고개를 들어보니 목련이 피고 있더라.
2009/03/2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