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감상을 풀어놓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렸다간, 공연에 대한 잔상이 아무 흔적도 없이 모두 다 사라질 것 같아 뭐라도 끄적여놔야겠다 싶어서 최대한 기억을 더듬어 일단 아주 간략하게라도 기록.
08/12/20 홍광호-김소현-소냐, 지킬앤하이드, LG아트센터
지난 17일의 감동을 다시 느낄 수 있을까, 조금 긴장한 마음으로 공연장에 들어섰다. 지난 번 공연 때 꽤 안정적이던 지킬 대사 발성이 다시 위로 올라와서 조금 불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지킬/하이드의 감정선은 계속해서 절박해지고 있더라. 광호군이 표현하는 지킬/하이드는 꽤나 절박하고 절절해서 연민을 느끼게 된다. 많은 관객들의 평처럼 가장 귀족적이지 않은 지킬이랄까.
여전히 소현엠마와 꽤 그럴듯한 로맨스를 보여주더라. 첫공을 생각하면 정말이지 기대 이상의 발전;;; 소냐루시는 지난 번보다 훨씬 좋아졌다. 처음으로 서는 <지킬앤하이드> 무대가 아닌데도, 첫공은 누구에게나 긴장되는 모양. 여전히 외화 더빙 성우 같은 소냐의 대사 표현은 거슬리지만, 디테일하면서도 납득 가는 연기가 좋다.
이 날의 <덴져러스 게임>은 손꼽히는 <덴져러스 게임>이었던 걸로 기억. 볼 때마다, 이 넘버의 안무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이 넘버를 제대로 소화해내는 광호군이 감탄스러울 뿐이고.
나를 굳어버리게 했던 지난 번 엔딩을 떠올리며, 오늘은 어떻게 표현해줄까 궁금했는데, 지난 번의 서늘한 웃음 대신 칼에 몸을 꽂아박았다가 빼는 순간, 휘청거리며 어터슨의 어깨를 토닥여주는 걸로 마무리하더라. '당신 탓이 아녜요, 존... 난 괜찮아요...' 라고 말하는 듯 해서 찡한 구석이 있지만, 난 막공까지 결코 17일과 같은 공연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케스트라 실수가 잦았다. 특히 관악기 주자들... 도대체 몇 번 공연했는데, 아마추어처럼 계속 실수를. 절대로 실수해서는 안 되는 부분까지 삑사리 내는데야... 관객들이 거슬려 하지 않을 정도로는 연습이 좀 되었으면 하는 바람.
08/12/25 홍광호-임혜영-김선영, 지킬앤하이드, LG아트센터
민지와 은진이와 함께한 크리스마스 공연. 커플들로 메워진 객석 분위기는 (부정적인 의미로) 장난이 아녔다. 박수도 없고, 반응도 없고, 그냥 데이트 코스로 공연장 찍으러 온 사람들인 것만 같았다. :-(
공연은 나쁘지 않았다. 괜찮은 편이었다. 헌데, 17, 20일 공연에는 못 미치는 무난함이랄까. 광호군 노래야 말할 것도 없이 워낙 좋으니까 디폴트로 넘기고, 나는 이제 관극의 포인트를 광호군의 연기로 잡는데, 애끓고 폭발할 것 같은 지킬/하이드의 감정선이 이 날은 좀 약했더랬다.
지난 번 완전 무감흥으로 봤던 공연도 홍지킬-임엠마 페어였는데, 이 페어로 볼 때마다 아쉬운 부분이 있다. 류정한씨와 공연하는 임엠마는 맹목적으로 지킬을 지지하는 귀여운 아가씨의 느낌이라 꽤 괜찮았는데, 광호군이랑은 어색해보인다. 아무리 <지킬앤하이드>가 남자주인공 하나에 기대어 가는 극일지라도 다른 배우들간의 케미스트리가 없으면, 채워지지 않는 빈 공간들이 자꾸 생기곤 한다.
특기할 점은 레드렛에서 제대로 진상 떨던 앙상블 고객들. 객석의 반응이 시큰둥해서인지 오히려 자기들이 더 생난리치며 루시에게 열광하는데, 앙상블들 때문에 한참을 웃었다. 재밌었어. ㅎㅎ
역시 공연에선 배우와 관객들간의 케미스트리 역시 몹시 중요하다는 걸 느꼈던 날. 공연장의 공기, 객석의 분위기가 배우들의 연기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니까. 공연이라는 건 일견 배우들이 온전히 이루어내는 것 같아도 결국 배우와 관객이 주고 받는 대화가 아닐런지.
이러한 공연에 대한 아쉬움에도 불구, 친구들과 함께 해서 더욱 즐거운 크리스마스였다. :-)
08/12/31 엄태리-박정표-이봉련-이상은, 빨래, 알과핵 소극장
2008년의 마지막 날. 도무지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내내 울며 봤던 <빨래>를 다시 보러 갔다. 내년 4월에 연강홀에서 다시 올린다지만, 이번에 다시 보지 않으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
다시 보는 빨래는 첫번 관람만큼 통곡하고 싶어질 정도로 격한 감정으로 나를 몰고 가진 않았지만, 여전히 찡해서 울컥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었다. 슬픈 장면에서는 조금 덤덤해진 반면, 재밌는 장면에서는 더 많이 웃게 되더라. 신기하지. 낫심의 정문성씨는 여전히 미치도록 귀엽더라. 계속해서 웃음을 자아내는데야... <빨래>를 통해 이봉련과 정문성이라는 배우를 발견하게 되었달까.
나는 지난 번 하지 못한 기립으로 이런 좋은 공연을 올려준 극본, 작곡, 연출가 및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아낌없는 감사인사를 전했는데, 그 마음이 잘 전달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막공이라 더블 캐스트 배우들까지 모두 나와 함께 무대 인사를 했고, 연출가들의 인삿말도 있었다.
그리고, 놀랍게도 난 이 날 공연장에서 또 광호군과 마주쳤더랬다. 예상치 못한 갑작스런 등장에 너무 당황한 나머지 또 꾸벅 인사하고 황급히 도망쳐와서는 은진이 붙잡고 두고두고 후회했는데, 사람들 말처럼 2008년도 마지막 날에 광호군을 볼 수 있어 즐거운 순간이기도 했지. 다음엔 또 어느 곳에서 우연히 만나게 될 지 기대가 되기도 하고. 하지만, 그 때도 또 하얗게 되어서 꾸벅, 후다닥... 이럴 것 같아서 걱정. ㅠㅠ
08/01/04 홍광호-임혜영-소냐, 지킬앤하이드, LG아트센터
오랜만에 만나는 제인언니와 2009년의 첫 <지킬앤하이드>를 보러 갔다. 이 날의 공연은 꽤 좋은 편이었지만, 나를 광분 모드로 ㅊ달리게 해 줄 수준은 아니었는데 1~10의 범위로 보았을 때 7~8 정도는 쳐 줄 수 있는 괜찮은 공연이었던지라 깔끔한 느낌으로 기립박수치고 객석을 나섰다.
그리고 아래는 이 날 공연을 보고 다른 곳에 그닥 순화되지 않은 언어로 마구 적어내려갔던, 꼭 이 날 공연에 대한 감상만은 아닌, 두서 없는 글. 아주 약간 수정해서 옮겨본다.
단 한 번만 제 간청을, 단 한 번만 제게 기횔
늘 중간/왼쪽에서 보다가 오늘은 중간 구역에서 약간 오른쪽으로 치우친 자리에서 봤더니 지킬이 오른쪽을 향하고 있을 때의 표정을 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어. 스트라이드씨한테 예의를 차린 게 문제가 된다면 사과하겠다고 말할 때 빙글빙글 웃으면서 말하더라구 ㅋㅋ 그 이후 스트라이드씨 분노의 폭풍필기 신공 발휘 ㅋㅋㅋ 그래도 오늘 스트라이드씨 덜 깐죽대더라.
제일 처음 홍지킬의 이사회씬을 봤을 땐 너무 조급하고 지나치게 절실하다는 인상이 들었어. 7년의 연구에 대한 임상실험을 허가해달라고 요청하는 자리이니 절실한 것이 사실이지만, 지킬이 조금 더 자신있는 태도로 조금 더 담담해도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했었거든. 헌데, 홍지킬 공연을 여러 번 보다보니 나중엔 그 지나친 절실함이 와닿더라고. 완전 절실하고, 또 완전 낙심한 지킬의 모습/눈빛에 어터슨씨 말처럼 내 마음이 아파지고. 20일날 공연 땐 정말 심하게 울먹거려서 저러다 펑펑 울겠구나 싶을 정도로 절실한 감정선이었는데 오늘의 이사회씬에서는, 오히려 좀 여유로워진걸까, 이미 거절 당할 것을 알고 준비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
헌데 오늘 이사회씬에서 인상적이었던 건 프룹스의 연기. <보세요, 지금 여러분 그 내면 속의 사악함 그 분노 폭력 파괴 혼돈 그러니....>라고 지킬이 노래하고 난 직후의 프룹스의 그 표정 연기... 감히 내 내면에 사악함, 분노, 폭력, 파괴, 혼돈이 있다고 말하다니 부들부들...하는 그 경멸 어린 표정 연기 일품이었음.
그건 제 신념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약혼식 장면에서 엠마에게 가기 위해 지킬이 친구 2인 크리 거치고 덴버스경 크리에 걸렸을 때, 싱글싱글 웃으며 인사하다가도 <그래도 성 주드 병원에서의 회의 때보단 덜 초조했네>라고 덴버스경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안면 싹 바꾸고 광호 특유의 긴 눈으로 확 째려보면서 <그건 제 신념이라 어쩔 수 없었습니다>라고 하는 장면은 볼 때마다 인상적이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한데, 광호가 표현하는 지킬은 속내를 숨기지 않고 그대로 얼굴에 드러내는 사람이며, 자신의 연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한, 그래서 리터럴리 사교에는 서툰 사람이기 때문인 듯 해.
임엠마와의 케미스트리 상승선 진입
홍지킬 첫공 봤을 때, 엠마 보면서 <사랑한다>는 말조차 똑바로 못하는 뻘쭘함 어쩔 거냐며 한탄했었는데, 지난 17일 공연을 계기로 김엠마와 절절한 로맨스를 표현하더니, 오... 오늘 공연에선 임엠마와도 절절해졌어. 임엠마랑 친해진 건가 싶을 정도. 홍-임 페어의 무감흥 때문에 이 커플 좀 기피하는 마음이 있었는데, 오늘 보니까 홍지킬의 임엠마에 대한 손키스가 제대로 끈적끈적/축축한 것이 이 커플의 케미스트리도 상승선 타고 있는 모양. 마지막에 덴버스경이랑 어터슨씨와 와서 홍지킬 불러낼 때도 헤어지기 싫어하는 게 진심 역력해서 순간 내가 다 질투가 날 지경이었음. ㅋㅋㅋ
재밌는 게, 약혼식에서의 엠마와의 케미스트리(Take Me As I Am)가 어떠냐에 따라 후반부 실험실에서의 엠마와의 장면(Once Upon A Dream)에 영향을 미치던데, 오늘 엠마가 실험실에 왔다가 떠났을 때 홍지킬 죽을 것처럼 힘들어하며 결국 무릎 꿇으며 무너지더라. 공연마다 이 장면에서 얼굴만 가리는 정도로 힘들어할 때도 있고, 오늘처럼 무릎 팍 꺾으며 철퍼덕 무너질 때도 있거든. 오늘 엠마와의 케미스트리가 꽤 좋았다는 얘기여요. ㅎㅎ
No One Knows Who I Am
노래 취향에 따른 개인적 루시 선호도는 선영루시>>>>>>>>>>>>>>소냐루시>>>수정루시고, 연기 취향에 따른 개인적 루시 선호도는 소냐루시>>>>>>>>>>>>>>>>>>>수정루시>>>>>>선영루시인데, 역시 소냐루시 오늘 연기 좋았어. 사실 소냐루시는 대사 없을 때의 연기가 일품인데, < No One Knows Who I Am > 부르면서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건 오로지 소냐 루시. 거울을 한참 들여다보며 공허하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다가 보기 싫은 듯 거울을 확 가리며 내리는 연기하며... 소냐 루시는 관객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연기를 하는 것 같아.
소냐 첫공 봤을 땐, 대사 치는 톤이 너무 과해서 듣기가 좀 불편했거든... 그 톤이 좀 완화된 다음 공연에서도 같이 본 친구는 외화 더빙 성우 톤 같다고 그랬는데, 정말 좀 그런 느낌이었지. 게다가 수정/선영루시에 비해 너무 마담삘이 나서 굉장히 당황스러웠었거든. 근데 과도하게 느껴지던 어조나 너무 심하게 느껴지던 마담삘이 좀 사그라들어서 오늘 소냐루시는 소녀처럼 귀엽더라. *_* 제일 처음 소냐루시를 봤을 때의 그 당황스러움을 생각해보면 이 언니도 여전히 발전 중인 듯. 오늘 볼터치도 제대로 발그레 해서 암튼 춈 귀여웠음. ㅎㅎ
그리고 < Bring On The Men >으로 넘어갈 때 옷 벗으면서 치마 툭 떨구는 소냐 연기가 난 참 좋더라. 선영루시는 다음 노래 시작할 때까지 그 치마 허리 풀면서 다리 계속 가리고 있거든... 그게 나한테는 연기의 일환으로 안 보이고, 몸을 드러내기가 부끄러워서 가리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소냐루시는 맨살, 맨다리, 몸매 드러내는 거 신경쓰지 않고 치마 풀자마자 일부러 툭 떨구며 행동에 악센트를 주는 느낌이라 좋아. 그러면서, 속에 입고 있던 공연용 의상과의 대비를 확 이끌어내는 면도 있고.
그 외에도 소냐루시의 디테일한 연기 참 좋음. 지킬한테 명함 받고 나서의 태도랑, 기네비어에게 절대 지지 않는 막강 포스랑, 지킬한테 찾아와서 치료 받는 장면에서 지킬의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라는 말에 어리둥절하면서도 친절하고 상냥한 지킬이 마냥 좋다는 표정 연기랑, 편지 들고 온 어터슨씨에게 지킬이 왜 오지 않은 건지 씩씩하게 따지는 연기나, 하이드한테 살해 당할 때도 가차없이 억...억...해가며 리얼하게 죽는 연기 등등 좋아요.... 아주 좋아요....
지금 이 순간
레드렛에서의 자신의 모습에 대한 자책감, 자기도 별 수 없는 위선적인 인간이라는 것에 대한 깨달음... 결국 자기 자신으로 실험 대상으로 택하는 순간... 나는 여전히 지나치게 프로그래밍된 듯한 홍지킬의 몸 동작이 춈 거슬리지만 (이 장면이 너무 퍼포먼스화되는 게 싫거든) 그래도 역시 홍지킬의 대표 넘버지. 오늘 함께 공연 보러 간 동행은 이 넘버에서 잠이 확 깨셨다고. :-)
근데 <지금 이 순간 마법처럼~>하면서 서재 무대가 실험실 무대로 전환되는 순간, 나 넘 좋아. 정말 마법같잖아. ㅎㅎ 여전히 실험실 선반에 놓인 해골은 좀 웃깁니다 ㅎㅎ 해골 쓸쓸해 보여~ ㅋㅋㅋㅋ 그리고 여전히 홍지킬은 <지금 이 순간> 실험실 장면에서 제일 행복해보여. 시험관 들고 눈 반짝반짝 해가며~
그의 꿈은 허상이야
아, 나 덴버스경 목소리 넘 좋아 ㅠㅠㅠㅠㅠㅠㅠㅠ 첫공을 이석씨로 보고 나서 김봉환씨로 다시 뵈었을 땐, 두 분 목소리 느낌이 달라서 춈 당황스럽기도 하고 좀 더 푸근한 느낌이었던 이석씨 목소리가 그립기도 했는데, 난 이제 김봉환 샘의 노예임 ㄲㄲㄲㄲㄲ 목소리 넘 좋으심다 ㅠㅠ 이 분 목소리로 <그의 꿈은 허상이야!> 하실 땐 너무 강렬해서 막 슬퍼... 여전히 지킬을 믿어주는 엠마에게 지킬은 '왜 내 이름은 도대체 엠마가 아니란 말인가! 대체 왜!' 한탄하게 만드는 <엠마~엠마~엠마~>를 날려줍니다 ㅠㅠㅠㅠㅠㅠㅠㅠ 암튼 개념 4중창. 오늘도 임엠마는 좀 묻혔지만;;;;
정말 덴져뤄스했던 덴져뤄스 게임
와..... 나 오늘 앙상블한테 눈길 한 번 못 돌렸다 ㄲㄲㄲㄲㄲㄲ 그만큼 루시와 하이드의 덴져러스 게임이 압도적이었어.
사실 덴져러스 게임 넘버 시작하기 전부터 나는 깜놀 모드였는데, 하이드가 루시에게 <난 잠시 떠나 있어야 해. 친구와 작은 충돌이 있어서 말이지. 왜? 떠난다니 기쁜가?> 라고 대사치는 장면에서 이미 하이드가 루시를 위험하게 더듬더만;;;; 보통 배까지만 더듬는 것 같았는데 오늘 가슴까지 제대로 터치해서, <덴져러스 게임> 시작 전부터 나를 놀라게 함. @_@
위에도 말했듯이 소냐의 마담삘이 많이 사그라들어서 홍하이드-소냐루시의 <덴져러스 게임> 균형이 더 제대로더라. 천하의 소냐루시가 오늘 홍하이드한테 제대로 발려버리는 그런 모드였어. 짝짝짝. 내가 n번의 공연 관람 중에서 앙상블에게조차 눈돌리지 못했던 건 이번이 첫공 이후 처음이었네효. 보통 앙상블 보면서 좀 웃어줘야하는데 ㅋㅋㅋ
근데, 나는 <난 잠시 떠나 있어야 해>라고 루시에게 알리는 하이드에 대해서 곰곰 생각해보게 되는데, (결과적으로는 하이드가 뭐 그리 잠시 떠나 있는 것 같진 않지만) 저 말을 하러 루시에게 왔을 때의 '지킬과 하이드의 관계'에 생각이 미쳐서 말이야. 이 부분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하이드에 대한 썰을 좀 길게 풀게 될 때 적어볼까 해... 아, 하이드는... 특히 홍하이드는 정말 내 마음을 아프게 하거든...
넘버별 간략 코멘트
< The Way Back > 사실 난, 광호의 <지금 이 순간>보다 <나의 길을 가겠어>에서 더 감동 받아... 오늘도 닥찬! ㅠㅠ
< A New Life > 다시는 지킬을 못 본다는데, 별 설명도 없이 오늘 당장 런던을 떠나라는데, 돈이랑 편지 받고 좋아라 <시작해 새 인생> 부르는 루시는 참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뭐 이게 루시 잘못이냐 프랭크 와일드혼이랑 레슬리 브리쿠스 잘못이지 췟 ㅋㅋㅋ), 오늘의 소냐루시는 그냥 이 노래만으로 빈 공간을 설득력 있게 채워줘서 감동 받았어...
< Confrontation > 오늘 컨프론테이션 좀 힘겨워보이긴 했지만, 난 좋았음. 아마도 <지킬앤하이드>에서 가장 소화해내기 힘든 넘버겠지? 동시에 가장 매력적인 넘버기도 하고. 무대효과라고는 오로지 조명 하나에 기대어 두 사람의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넘버... 오늘도 역시 홍지킬은 루시의 죽음에 절규하며, 간신히 컨프론테이션하러 튀어나왔어요... 루시의 죽음에 절규하는 홍지킬 ㅠㅠㅠㅠㅠㅠ
아, 근데 이건 오른편에 앉은 덕에 오늘 처음 본 건데, <난 아무데도 안 가요>라고 말하는 루시에게 홍하이드가 다가가면서 옷가지를 챙겨넣은 가방 속을 '확인'하더라. 중간 또는 왼편에서 봤을 땐 그냥 침대에 올라갈 자리를 마련하느라 가방을 들어서 옮기는 것처럼 보였는데, 오늘 보니까 가방 속에 들어 있는 옷을 들추어 살피고 난 후 가방을 옮기는 거였어. *_* 나름 디테일해 ㅋㅋㅋㅋ
엔딩, 그리고 두서없이 긴 글을 주섬주섬 정리하며...
난 12월 17일 공연의 홍지킬/하이드의 안도, 해방감, 자조, 경멸이 뒤섞인 그 서늘한 웃음을 본 이후론 그 어떤 엔딩에도 만족할 수가 없어. 엔딩씬에서 그런 광호의 표정은 그 전에도 후에도 본 적이 없어서... 마음이 찡하게 아프고 소름이 돋아서, 잠시간 박수조차 칠 수 없었던 유일하게 감동이라는 걸 받은 엔딩씬이었거든. 그 이후 홍지킬/하이드는 어터슨 어깨를 토닥토닥하며, '당신 탓이 아녜요' 모드로 죽긴 하는데... 이 쪽도 좀 찡한 면이 있긴 하지만, 난 17일 공연의 그 느낌을 다시 느껴보고 싶어.
이제 약 두 달 남은 이 공연에서 광호가 다시 그런 연기를 보여줄 지, 다시 그런 공연을 보여줄지... 오늘의 공연은 클린하긴 했지만 루틴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았어서 정줄을 떨어뜨릴 정도로 흥분하진 못했지만, 난 또 기대감을 안고 엘지로 달려가겠지. 발전을 기대할 수 있는 배우를 지켜보는 재미가 이런 건가봐. 부디 다음 공연 땐 날 ㅊ달리게 해주길!
p.s.
# 광호는 연기할 때 상체 굽신굽신 숙이는 버릇 좀 어떻게 해야 할 듯 ㅠㅠ 이런 행동 때문에 지킬이 더 귀족같아 보이질 않아. 좀 더 꼿꼿하게 허리 딱 펴고 연기해도 좋을 것 같은 대목에서 자꾸 상체를 까딱까딱 굽혀서 좀 거슬리는 장면들이 있음. 그게 본인의 해석이라면 내가 또 뭐라 할 수 없겠지만 ㅠㅠ
# 여전히 루시의 방에서의 하이드는 상처 받은 짐승.... ㅠㅠ 아, 홍하이드 어쩔거냐며.... 근데 오늘 그 '새끼' 안했어 ㅠㅠ
그리고 누가 뭐래도 이 날의 수확은, 광호군과의 마스크 커플샷. 마스크 쓰고 갔는데 마침 광호군도 마스크 쓰고 나왔더라. 유쾌한 사진이 될 것 같아서 같이 찍자고 나름 용기내어 부탁해보았다. 나는 좋다고, 눈이 안 보일 정도로 웃고 있는데 마스크에 가린 광호군 표정이 금세 읽히질 않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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