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1/9 홍광호-김소현-소냐, 지킬앤하이드, LG아트센터
회사 안팎으로 심란한 상황들이 발생하여 컨디션이 좋지 않은 상태로 공연 시작 3분 전 겨우 객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생수병 하나 옆에 끼고, 오늘도 저녁은 굶는다. 이래저래 개인적인 사정으로 몰입도가 굉장히 좋지 않았을 뿐더러, 신경은 잔뜩 날카로워 그 동안은 적응해왔다고 생각해왔던 부분에 대해서까지 이해심 없는 관객 모드였다.
결론적으로 이 날 광호군은 그 동안 내가 거슬렸지만 적응해왔던 산만하고 불필요한 움직임을 종합세트로 풀어주는 바람에 연기면에서는 좀 실망스러웠고, 노래는 굉장히, 굉장히, 굉장히 좋았다. 실제 공연에서는 오늘의 <지금 이 순간>만큼 감동한 적이 없었을 정도로. <얼라이브1>와 <얼라이브2>는 또 어떻고. 다만 이 날의 <컨프론테이션>은 불필요한 잔상이 남도록 하는 휘청임 때문에 평소보다 오히려 불안해보이는 면이 있었다. 늘 감동 받는 <나의 길을 가겠어The Way Back>에서는 오히려 내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바람에 제대로 감상을 못하고...
이 날 내 집중력이 얼마나 안 좋았냐면, 공연 첫곡인 <파사드 Facade>에서 푸른 조명 받으며 군무와 합창으로 연기하는 앙상블 보면서 갑자기 <레 미제라블>이 너무 보고 싶어져서 막 딴 생각하고;;; 배우들이 대사 치는데 바로 전에 무슨 말 했는지 안 했는지조차 인지가 안 되는 수준이었음. ㅠㅠ 역시 평일 공연 관람은 이런 면에서 좀 고생스러운데, 한편으로는 여태껏 내가 최고로 치고 있는 17일 공연도 평일 공연이긴 했네.
오늘 객석 분위기가 최고였다. <파사드>에서 박수 터지는 건 처음 봤는데, 계속해서 배우들이 넘버 멋지게 불러낼 때마다 장내가 떠나가라 치는 박수, 열렬한 호응, 함성이 계속되어 무대 분위기보다 객석 분위기가 더 좋았다. 나중에 보니 계원예고에서 단관을 왔다더라. 아, 고딩들... 너무 부럽더라. 자기들 선배가 주인공으로 선 무대를 보면서 즐겁게 공연 보고 신나게 박수치고 열렬히 환호하며 꿈 한 조각 마음에 심고 돌아갔겠지. 객석 호응이 장난 아니게 좋으니까 광호군을 비롯 배우들도 커튼콜에서 방글방글 기분 좋아하던데. 공연 끝나고 나서도 이 어린 친구들은 바로 돌아가지 않고 축제처럼 공연장에서 모여서 단체사진도 찍고 시끌시끌하는 모습이 너무 밝고 생동감 있어서 마냥 부러웠다.
그럼 다시 광호군 연기 얘기로 돌아가면, 이 청년은 정말이지 하루 빨리 손이랑 몸 쓰는 법을 터득할 필요가 있다. 너무나 불필요하게 손을 자꾸 사용하는데 이 날은 <이해심 없는 관객 모드>였던지라 그 손놀림이 너무너무 거슬리던거지... 다른 거 다 빼고, 지금 쓰는 불필요한 손동작의 2/3만 없애도 훨씬 더 안정적일 거다. 역시 불필요하게 상체를 굽신거리거나 까딱거리는 것도 빨리 고치는 게 좋을 듯. 이제 막 주연급으로 무대에 서기 시작한 청년에게ㅡ게다가 이런 엄청난 노래를 하는 사람에게ㅡ성급하게 너무 많은 걸 요구하는 것도 부당하다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 이 청년의 연기가 노래에 갇히게 되는 건 정말 원치 않기 때문에...
그리고 여전히 루틴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연기도 아쉬운데, 광호군은 반복관람객을 위해 연기하는 건 아니니까 늘 다른 느낌을 낼 필요는 없겠지만, 내가 바라는 건 약간의 의외성, 그리고 열심히 루틴을 좇고 있다는 느낌을 조금만 더 죽이는 거? 사실 관객으로서 세 치 혀를 놀리기는 쉬우나, 그 의외성이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 거겠느냐만은;;;
오늘 무척 좋았던 부분은 레드렛에서 돌아와서 집으로 들어가기 직전, 자기 자신을 연구대상으로 결정하는 순간의 광호군의 연기. 이 장면에서 광호군은 지킬을 연기하는 다른 배우들과 사뭇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데, 이미 집으로 들어가기 전 <지금 이 순간>을 선택하게 되는 그 순간을 매우 극명하게 표현을 하기 때문에 <결과만 걱정하다간, 결국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법이죠>라는 대사를 하며 반짝반짝 희열에 찰 수 있는 것. 사실 이 장면에서의 광호군의 연기가 이전과 다르거나 새로운 건 아니었는데 처음으로 1열에 앉아 확연히 변하는 표정을 세밀하게 보게 되니 이전과는 다른 충격이 있더라. 아, 그래, 그런 거구나, 그런 거였구나... 하는 깨달음의 순간을 그제서야 경험했달까.
한편, 소냐루시는 계속 발전 중인데, 계속 이러다간 노래 선호도로 따졌을 때 선영루시>>>>>>>>>>>>>>>>>>소냐루시였던 공식마저 뒤집히겠다. 여전히 다른 루시들에 비해선 억척스런 마담삘이 나긴 하지만, 점점 소녀삘이 살아나고 있는 데다가 오늘의 <당신이라면 Someone Like You>는 아, 정말이지... <저 하늘높이 나는 날아올라>를 부르는 대목에서는 이미 새가 되어 하늘을 나는 듯 빛나던 소냐... 참 아름답더라. 사랑에 빠진다는 건 저런 거겠지 싶던.
1열 9번 좌석은 <나도 몰랐던 나 It's A Dangerous Game> 전용석이더구만. 하이드가 유일하게 교감하는 사람이 루시 뿐이라는 걸 생각해봐도 굉장히 중요한 넘버인데다가, 루시와 하이드의 육체적 끌림을 매력적으로 표현해줘서 좋아라 하는데, 오늘 보니 하이드를 거부하던 루시가 <천천히~ 깊숙히~>라며 노래하는 대목에서 결국 와르르 무너지더라. <덴져러스 게임>은 1열 9번에서 필견!
홍하이드는 오늘도 루시의 방에서 <아무데도 안 가요>라고 거짓말한 루시가 싼 짐가방 속의 가운을 들어서 확인해주면서, 루시의 거짓말을 확인하는 연기를 해주더라. 초반에는 못 봤던 연기인데, 그 동안 인지하지 못했던 건지, 광호군이 최근부터 추가해 넣은 건지... 어느 쪽이든간에, 소름이 쫙 돋더라만.
오늘 죽은 건 지킬... 어터슨씨에게 죽여달라고 애원한 것도 지킬... 죽어가면서 아주 담담하게 "엠마... 엠마..."를 읊조리던 것도 지킬. 그 담담하고 편안한 "엠마..."가 되게 와닿더라. 지킬도 하이드도 비로소 편안해지던 순간... 내 마음도 갑자기 편안해지던 느낌.
p.s.
앞으로는 단순 기록용으로 남기는 이렇게 구구절절한 반복 관람 공연 메모는 기피해야 할 듯... 인상적이지도 않을 뿐더러, 에너지 소모가 심하다. 지나친 반복 관람을 기피하는 게 우선이어야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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