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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빌

RENT - 사는 게 더 허전해지던, 2009/03/23

사는 게 재미가 없다고 말했을 때, 3년 전에도 내가 그랬다고 민지가 말했다. 땅, 뒷통수를 맞은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그 때는... 사는 게 재미없었다기보다 사는 데 지쳐있었던 것 같다. 지금은, 사는 게 좀 재미가 없다. 
렌트를 보고 나면 좀 낫지 않을까 싶었는데ㅡ그러고보니 노래만 들어왔지 나 놀랍게도 렌트를 본 적이 없더라ㅡ이렇게나 산만하고 마음을 전혀 두드리지 않는 공연도 간만이라, 돌아나오는 마음이 허전해서 견디기 힘들 지경. 공연이 대체 이렇게나 부산스럽고 산만하고 웃기지도 슬프지도 않아서야... 게다가 작품이랑 어울리지도 않는 1,000석 규모의 공연장 잡아두고는 객석이 심하게 썰렁해서 박수도 호응도 없어 내가 다 민망하고. 

조승우/정선아/김호영 캐스트였다해도 이 작품을 좋아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는 비관적인 생각이 드는 공연. 배우가 문제였을까, 연출이 문제였을까, 번역이 문제였을까, 좌석이 문제였을까,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그토록 렌트를 사랑하고 렌트에 열광하는 수많은 관객들이 보았으나 내가 보지 못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 작품, 어째서 명작인지 의문이 드는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음악은 좋은데, 극에 녹아내리지 않더라. 무척 유감스럽게도 나는 이 공연이 좋지 않았고, 이 공연을 좋아할 수 없음이 억울했다. 그래도 호영엔젤이 궁금해서 02년 한국판 OST를 사들고 왔는데, 이때만 해도 김호영씨 초연이라 그런지 음정이나 가창력이 좀 불안하긴 하네. 이제 다시는 엔젤은 하지 않겠다니 볼 일은 없겠지만, 무척 사랑스러웠을 것 같아 궁금하다. 호영엔젤이었다면 좀 더 설득력 있었을까, 감동할 수 있었을까. 음악은 역시 좋긴 하다. 

억울해서 집에 와서 맥주 한 캔 땄다. 사는 게 더 허전해졌다.
comment [8]
퍼플
090323  del
렌트는 좀 취향을 타는 작품인 듯 하고... 
나두 라이센스로는 이상하게 안 끌려서...그냥 영화로 만족했다는. 
난 토욜 봤던 쥴리엣 비노쉬와 아크람 칸의 공연이 기대보다 실망이어서...안나 까레리나를 고대하는 중. 

P.S - 사는 게 재미있어지려면 우리가 가져야할 게 뭘까...
소리
090323  del
제 취향은 나름 관대하다고 생각해왔는데, 어제 공연은 정말이지... 예를 들어, 공연이 취향을 탄다면, 제가 별로라고 생각해도, 남들은 이런 부분에서 좋아할 수 있겠구나 정도의 공감은 가능한데, 어제 제가 본 렌트는 대체 이 작품 왜 유명한거야????? 라는 물음표만 가득 안겨주어서 정말 당황스러웠어요. 제가 좋은 연출, 좋은 배우, 좋은 무대, 좋은 좌석, 이 모든 합이 갖추어진 상황에서 렌트를 보았다면 이런 황당한 기분으로 공연장을 나서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혼란스럽다 못해 찜찜하고 허전하기 그지 없는 기분... 아, 정말 억울했다구요. ㅠㅠ 

어떻게 하면, 사는 게 재미있을까, 의미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는 게 제 요즘 숙제인데... 어렵네요. 한 가지 확실한 건, 공연을 보고 책을 읽고 맛있는 걸 먹는 정도로는 해결이 안 된다는 거예요. 뭔가 좀 더 근본적인 게 필요해요. 그게 대체 뭘까요? ㅠㅠ
은미
090323  del
렌트..조승우가 할 때도 표가 있는데도 안 본 나는 그닥 그 공연이 땡기지가 않을 뿐이고..ㅎㅎ 
삶이 재미있어지는 방법..그걸 찾게 되면 나한테도 살짝 귀띔해줄래요?(아무것도 안하고 묻어가보겠다는..심보ㅋㅋ) 그건 내 평생 숙제이기도 하거든..
소리
090323  del
은미/ 뭐랄까... 제가 이 공연을 너무 '늦게' 본 게 아닐까 싶었어요. 일찍 봤더라면, 배우들이 일렬로 늘어서는 것만 봐도 눈물이 찍 날 정도로 감동할 수 있지 않았을까... 더 좋은(?) 프로덕션으로 다시 제대로 보고 싶어요. 어제 본 공연이 대체 뭐였는지 전 아직도 혼란스럽거든요... orz 

삶의 재미와 의미... 해답을 찾으면 제일 먼저 알려드릴테지만, 지금까지의 패턴을 보면, 1) 아, 사는 게 재미가 없다. 삶의 의미가 대체 무어냐 -> 2) 고민, 고민, 고민 -> 3)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망각, 망각, 망각 -> 4) 다시 아... 사는 게 재미가 없었지, 사는 의미가 무어더라, 의 주기를 해답 없이 지속 반복하게 되는 것 같아요. ㅠㅠ
090323  del
저는 조승우, 그리고 로저 더블이었던 신동엽으로 [렌트]를 몇 번 봤어요. 콜린 & 엔젤은 최민철 & 김호영이었고요. 몇몇 배우들에 대한 호오와 상관없이 [렌트] 자체가 정말 마음에 들어서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답니다. 소리님의 감상 읽으니 괜히 제가 아쉽지만, 대신 다른 좋은 작품들이 마음을 채워주겠죠 :-)
소리
090324  del
elga/ 우아아아아아앙. ㅠㅠ 엘가님, 전 맘껏 빠지고 좋아할 요량으로 갔다가 정말이지 너무너무너무너무 허해져서... 이게 뭐냐~~~~~ 하며 괴로웠어요. 밤바람은 왜 또 그리 차던지;; 작품 속 캐릭터들의 삶에 대한 열정도, 희망도, 재치도 느껴지지 않는 이 부산하고 산만하기 그지 없는 공연은 대체 뭘까 싶어서 말여요. 누가 제발 이번 프로덕션 보고선 원래 <렌트>는 이런 공연이 아니라고 말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제가 도저히 볼 수도, 느낄 수도 없었던 <렌트>의 정수가 무엇일지 다음에 만나면 얘기 좀 해주세요.
090324  del
덧글 다시 달아요. 이번 [렌트] 캐스트가 평이 정말 좋지 않다는 건 알고 있었어요...제가 본 두 번의 [렌트]라이센스 공연과 OST, 영화까지, 저한테는 통틀어 최고의 뮤지컬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작품인데 아쉽네요. ㅠㅠ 처음에 본 캐스트는 이건명/정선아였고, 두번째 본 캐스트는 조승우/고명석이었지요. 엔젤은 둘 다 김호영이었고. 전체적인 공연으로서는 토월극장에서 본 첫번째가 더 짜임새 있었던 것 같지만, 두번째 공연도 충분히 [렌트]다웠어요. 아무튼 허전한 공연 보고 나오면 마음이 참 허해요, 그쵸? 뭐 재밌는 거 더 보여줘~ 싶은 그런 기분. 토닥토닥.
소리
090325  del
하니님 목소리로 [내 인생의 뮤지컬, 렌트] 이야기 듣고 싶어요. 글이든 말이든 다음에 꼭 얘기해주세요!! *_* 이번 공연 악평이 많아서 저도 머뭇거렸다가, 그래도 최근에 많이 나아졌다고 해서 보고 왔는데, 저에겐 정말 별로였어요... 하니님이 보셨으면, 아쉬웠더라도 [렌트]니까 좋아하셨을 것 같아요. 

그래도, 렌트 초연 전날 돌연사ㅡ대체 이 무슨 비극인지ㅡ했던 조나단 라슨을 기리기 위해 초연 대신 Seasons of Love 를 오프닝으로 해서 렌트 전곡을 죽 부르다가 La Vie Boheme 에 이르자 다들 열정에 찬 마음을 어쩌지 못하고 그냥 그 곡부터 무대 의상/분장 없이 렌트 공연을 했다는 초연 멤버들의 이야기는, 마음을 울려요. 

ㅎㅎ 근데 저 이래 놓고, 공연으로 못 채운 허기짐을 달래보려고 렌트 영화 DVD랑 브로드웨이 마지막 공연 실황 DVD 주문했어요;;; 그거 보고 나서 다시 얘기해야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