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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빌

[지킬앤하이드] 그러니까, 뭐가 문제였던 걸까, 2008/12/16

08/12/13 홍광호-임혜영-김선영, 지킬앤하이드, LG아트센터

그토록 보고 싶었던 홍의 무대였건만, 그리고 좌석도 여태까지 앉았던 중 가장 무대와 가까운 2열 중간이었건만, 어찌 공연을 관람하는 정서적인 거리는 이렇게 멀고도 멀 수가 있었는지. 2열 중간석은 정말 대단하긴 하더라. 단차이 없는 1-3열 구역이라, 앞사람 머리 때문에 좌측에 자주 출몰하는 지킬/하이드 보기가 불편한 점만 빼면, 컨프론테이션도 그렇고, 결혼식 때 걸어나오는 것도 그렇고 완전 나를 향해 공연하더만...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덴져러스 게임>을 앞사람 머리 때문에 겨우 상반신 부분만 볼 수 있었던 건 회복 불능의 치명타! 

근데 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너무도 가까워서 5열에서조차 놓쳤던 표정들이 손에 잡힐 듯 선명한데, 그냥 내 앞에 누가 움직이는구나, 누가 노래를 하는구나 정도의 이 뭉툭하기 짝이 없는 느낌은 대체 뭐였담. 전날 밤 잠도 충분히 잤는데, 심지어 중간중간 졸리웁기까지... 아, 이번 달은 그렇다치고 1월에 질러놓은 무수한 표들을 어째야 하나 마음에 시험이 드는 순간이었다.

너무 많이 보았나 싶었다. 물론 상대적인 기준이 아니라 절대적인 기준으로. 배우와 연출의 역량으로 채워지지 못한 <지킬앤하이드>라는 극 자체의 한계를 내가 도저히 더는 감당할 수 없는 임계치에 이른 것은 아닌가 싶던 마음. <씨왓...> 같은 경우는 그래도 면마다 돌아가며 앉으면 '리터럴리' 매회 새롭게 보이는 것들이 있었는데, <지킬앤하이드>에서는 리터럴하게 새로이 볼 수 있는 것들이 한정되다보니 뭔가 다른 곳에서 새로운 것을 읽어내야 계속 달릴 수 있는 연료 공급이 될텐데, 그게 부족하다는 느낌. 그럼에도 불구, 이번 회차 관람에서도 지난 번에 보지 못한 것을 보았다. 근데 공연 끝나고 나니 그게 무슨 장면이었는지도 가물가물. 

그저, 내 컨디션이 그 날 따라 별로였는지도 모른다. 지극히 가까우면서도 붕 떠서 멀었던 그 느낌은 피로감이었는지도. 그도 아니면 <덴져러스 게임>을 놓쳐서 화가 난 걸지도. ㄲㄲㄲ

그래서 이 날의 공연에 대해서는 안타깝게도 별로 할 말이 없다. 류지킬 때 보았던 임혜영의 엠마는 모성이 제거된 당차고 귀엽고 맹목적인 귀족집 아가씨여서 와닿았었는데, 이 날의 엠마는 와닿지가 않았어. 오히려 어머니를 여의고 집안의 안주인 역할을 했을 엠마는 모성이 극대화된 캐릭터로 해석되는 게 옳다는 생각도 들었고. 선영루시는 노래야 두말할 것 없지만, 자꾸만 수정루시를 그립게 한다. 못된 버릇이다. 수정루시를 보면 금세 또 선영루시를 그리워할테니. 사실 <지킬앤하이드>의 정석적인 루시 캐릭터는 김수정이 표현하는 루시와는 거리가 있겠으나, 지킬/하이드가 흔들리고 끌릴 수 밖에 없었던 사랑스러운 루시가 의외로 굉장히 설득력 있어서... 그리고 루시가 결국엔 처참하게 죽음 당했어도 실은 하이드에게 진실로 사랑받은 순간들이 있었다고 느끼게 해주어서 그게 좋았다. 1월 말에 다시 수정루시를 보게 될텐데, 그 때도 내가 첫 관람에서 느꼈던 감정들을 느끼게 해 줄지 궁금.

<컨프론테이션>이 더 좋아졌다. 지붕을 날려버릴 것 같은 어마어마한 성량을 자랑하는 이 청년의 미성이란 정말이지... <지금 이 순간>은 여전히 아쉽다. 여전히 많이 움직이고 들썩인다. 손동작이나 몸동작을 좀 줄여줬으면 좋겠는데, 그게 이 청년의 해석이라면 또 어쩌겠나. 다른 캐스트는 어떤지 모르겠다. 류정한씨는 많이 움직이지 않는 편이었는데, 김우형씨는 아직 보지 못해서. 비록 <지킬앤하이드>라는 뮤지컬 자체가 '쇼' 같은 느낌이 없진 않지만, 여튼 이 대목에서 나는 지킬이 조금만 더 진중했으면 싶다. 연기는 여전히 루틴을 좇는 듯 하나, 과하다 싶었던 부분들이 조금 더 자연스러워졌다. 하지만, 여전히 '열심히' 한다는 느낌이 강세. 조금만 더 능청스럽고 뻔뻔스럽게 나가도 좋을 것 같은데... 일단 엠마와의 로맨스가 너무 약함. ㅎㅎ 

매번 이사회 장면은 집중하게 되는데, 이번 공연에서는 제발 기횔 달라며 이사회를 향해 지킬이 간청하는 장면부터 거절당하는 장면까지 내내 이사회의 시선을 피하고 고개를 떨구고 있어 마치 거절 당할 것을 미리 알고 있는 사람 같다는 느낌을 주더라. 원래도 홍지킬에게는 '너희가 어찌 나의 연구를 막으리' 같은 당당함은 별로 없지만, 지난 번에는 거절 당하는 순간 더욱 심하게 상처 입은 짐승 같은 느낌을 줘서 '마음이 아프네. 자네의 눈빛이...'라고 노래하는 어터슨씨에게 마구 공감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그냥 다 알고 있는 걸 확인하는 것 같았어. 어쨌거나 나는 피곤했고, 그래서 그냥 헛소리를 늘어놓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쉽지 않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 청년의 연기가 더, 조금 더 나아져서 이 빈틈 많은 극을 설득력있게 채워주기를 바라는 마음... 

무얼 봤는지 모르겠는 공연이 끝나고, 기립을 해 말아 고민하는 순간에도 이 청년이 나오니 나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게 되고, 걷잡을 수 없이 허한 마음에 공연장을 나와서 이 마음을 어떻게 추스리나 혼란스러워하다가, 두산아트센터 갈 때마다 만나서 얼굴 익혀 친밀해진 아가씨들과의 장장 다섯 시간 수다로 이 모든 허한 마음을 날려버렸다는 거... 이 날 만큼은 공연보다 공연 이후의 수다가 즐거워서, 차를 마시고, 밥을 먹고, 또 차를 마시고 밤이 늦어서야 결국 헤어졌더랬다. 

그래도 어쩌겠나. <지킬앤하이드>로 시험 든 마음 <지킬앤하이드>로 극복해야지. 해서 소냐루시와의 컴비를 기대하며 내일은 무조건 칼퇴해서 LG로 날라버릴 계획;;; 내일은 꼭 살풀이하고 공연장 들어가야지. 내가 보게 될 홍지킬의 첫 밤공인데... 아무래도 낮공보다 배우도 관객도 집중도가 높지 않을까 싶다. 내일도 무감흥이면 질러놓은 표 다 정리 들어갈거야. 엉엉엉. (이래놓고 절대 정리 못할 거라는 거 알고는 있지만 ㅠㅠ)
comment [4]
소리
081216  del
뭐여;;;;; 정말 할 말 없는 공연이었는데 쓰고 나니 잡소리가 왤케 길지;;;;; 그야말로 <깜놀>일세.
소리
081216  del
아, 까먹기 전에 메모. 내일 공연을 보고 나서는 '존, 날 풀어줘요, 제발'이라고 말하는 지킬/하이드에 대해서 적어봐야지.
이은진
081217  del
ㅎㅎ 깜놀~ 오늘 홍&쏘냐의 공연은 어땠는지 궁금!^^
소리
081218  del
와.... 오늘 넘 좋았어.... 난 그냥 홍 믿고 끝까지 가는거다... 
소냐는 사실 별로였는데, 홍이 지나치게 좋았다... 
시간이 너무 늦어서 내일이나 정리 좀 해서 써보려고. 
아, 근데 자고 나면 오늘 느꼈던 거 반감될까봐 자기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