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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빌

적벽대전과 T's Trio, 2008/07/2

시은언니의 오랜 친구, 레이첼 언니의 트리오 공연에 다녀왔다. 트리오 공연이긴 하나 T's Trio는 객원 연주자들을 초청하여 듀오부터 퀸텟까지 다양한 연주를 선보였는데, 트리오의 리더격이신 바이올리니스트께서 곡 시작 전에 잠깐잠깐 설명을 덧붙여 주시곤 했다. 너무 많은 설명을 붙임으로써 관객의 상상력을 앗아가려는 의도는 추호도 없으나, 트리오를 결성하고 공연을 하게 된 계기 중에 음악에 대한 설명을 통해 관객의 이해를 돕고 싶은 마음이 있으셨다면서.

듀오, 트리오, 퀸텟의 구성을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것은 악기들의 대화란다. 어느 한 악기가 말을 할 때는 다른 악기는 같이 말하지 않고 반주를 하기 마련이라고, 그렇게 각기 다른 악기가 '테마'와 '반주'를 통해 대화를 나누는 것에 귀기울여보라고. 하여, 합주를 들으면서 악기들의 대화에 이처럼 애를 써서 집중해 본 적은 처음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번엔 바이올린 소리, 이번엔 비올라 소리, 또 이번엔 첼로, 그 다음엔 피아노, 그리고 다음엔 베이스, 이렇게 하나하나 짚어가며 악기들의 대화에 귀기울여보았다. 

아주 높거나 아주 낮은 소리는 애를 쓰지 않아도 쉽게 들리는 반면, 중간음을 연주하는 악기 소리는 집중하지 않으면 자칫 흘려보내게 되는 경우도 있었다. 어느 하나가 테마를 연주하면 다른 하나가 테마로 화답하거나 또 다른 하나는 반주로 응원하며, 악기들은 각기 테마와 반주의 규칙에 맞추어 대화하고 있었다. 

문득 엊그제 관람한 [적벽대전] 속의 주유와 제갈량의 거문고 배틀 장면이 떠올랐다. 마치 일렉트릭 기타로 모던 락을 연주하듯 하는 현란한 거문고 연주 장면과 곧바로 이어지는 '제게 음악으로 싸우시겠다 말씀해주셨습니다', '내게 음악으로 친구가 되어달라 했다오' 하는 이심전심 장면은 어쩐지 코믹하기까지 해서 킥킥 웃고 말았지만, 이 장면이야말로 의사소통적 음악, 가락을 통한 대화의 극치를 보여주지 않던가. 

무섭게 쏟아지는 빗줄기와 비가 그친 틈을 노려 격렬히 울어대는 매미소리가 후덥지근하기만 했던 여름을 이제야말로 제법 여름답게 하는 것 같다. (허나, 태풍 피해만은 너무 크지 않길!) 테마와 반주가 적절히 어우러지는 여름과 함께, 나는 서서히 우울의 주기를 빠져나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