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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빌

매튜 본의 가위손, 2007/02/16

 

걸어서 15분 거리에 공연장이 있다는 건 참 신나는 일이에요. 꽁꽁 언 눈길을 헤치고 도착한 케네디 센터에서 매튜 본의 [가위손]을 보고 왔습니다. 케네디 센터에서는 발레라고 홍보했기 때문에 가위손을 어떻게 발레로 표현할까 궁금했는데, 실제로는 발레라기보다 뮤지컬 같은 느낌이 강했어요. 카키에 청바지에 삼각수영팬티를 입고 추는 발레라니. :) 매튜 본 가위손 공식 홈페이지에서 소개하듯 musical play without words 가 더욱 적절한 표현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정말 재미있게 봤어요. 유머가 대단해서 보는 내내 관객들도 웃음을 터뜨렸고요. 무엇보다 조명, 무대, 의상이 예술이어서 저는 도저히 입을 다물 수가 없더라고요. 조명 하나로 해가 지고 밤이 찾아들고 동이 트고 눈이 오고 비가 오고 얼음이 쏟아져내리는 것을 표현할 수 있다니요. 토피어리들이 춤을 추는 환상씬에서도 감탄에 또 감탄. 인터미션 동안 무대, 조명, 의상 담당이 누군지 플레이빌을 마구 뒤적거리며 확인을 했죠. 아마 제가 조금만 더 어렸더라면, 이 공연을 보고선 "무대 예술 공부를 하겠어!"라며 잔뜩 자극 받았을 것 같아요. 

 대사가 없어도, 가사가 없어도 이렇게 사람 마음을 움직일 수 있다는 것... 에드워드가 사람들이 모두 잠든 마을에 몰래 내려와 쓰레기통을 뒤지려다가 서툰 손놀림 때문에 뚜껑을 떨어뜨려 큰소리를 내는 바람에 킴의 어머니가 집밖으로 나옵니다. 에드워드는 가위손과 얼굴을 쓰레기통에 깊숙히 숨겨보지만 킴의 어머니가 다가와 에드워드를 일으키고 그가 가위손을 가졌다는 것에 처음엔 경악하고 에드워드도 날카로와져 가위손을 휘두르다가 제 얼굴에 상처를 내자 킴의 어머니가 조심스럽게 손수건으로 상처를 닦아주지요.  따가움 때문에 격하게 반응하는 에드워드와 또 다시 조심스레 다가가는 킴의 어머니. 그리고 마침내 가위손을 뒤로 한 채 킴의 어머니에게 얼굴을 내미는 에드워드... 숲속 깊은 곳 오래토록 혼자 살아온 에드워드가 생전 처음으로 느꼈을 그 따뜻함 때문에 그만 눈물을 뚝뚝 떨구고 말았습니다. 이 공연에서 제일로 따뜻하고 제일로 마음을 움직이는 장면이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