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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빌

웨스트엔드 공연관람기, 2013/09/24

2013/9/10 Billy Elliot 19:30 
* Cast - Ali Rasul (Billy)

명불허전. Grand circle(우리식 3층)에서 멀리 내려다 보아도 좋았다. 오랜만에 다시 보니 더 좋았다. 
'빌리 엘리엇이 이렇게 좋은 작품이었지' 싶었고, 실로 오랜만에 공연 보는 즐거움을 다시 느낄 수 있어서 설렜다. 

소녀들과 빌리, 경찰, 시위대가 어우러지는 [Solidarity] 참 좋다며 흥겨워 하다 보면, 이 작품에서 제일 좋아하는 [Angry Dance]가 폭발하듯 터져나오고, 그러고 있노라면 몽환적으로 아름다운 [Dream BalletㅡSwan Lake]가 펼쳐지고, [Electricity]로 정점을 찍는 식으로 명곡과 명장면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북부 사투리는 억양뿐 아니라 단어까지도 낯설어 도무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과연 이걸 제대로 알아들을 수 있는 날이 내 생애 오긴 하려나;) 특히 늘 악에 받쳐서 버럭거리는 토니의 말은 영어인지 그리스어인지 알게 뭐냐 싶은 수준... 

웨스트엔드의 극장들은 대부분 모두 아담한 크기여서 2010년 LG아트센터의 넓직한 무대가 그립기도 했는데, 확실히 Angry Dance와 Once We were Kings 연출이나 조명은 서울 공연쪽이 훨씬 인상적이었다. 

런던과 서울 공연을 굳이 비교하자면 미세한 차이는 있었지만 공연장이 어디든 공연언어가 무엇이든 빌리 엘리엇은 역시 빌리 엘리엇. 더럼을 떠나는 빌리를 무대 밖으로 내보내고, 빌리를 떠나보내는 마이클을 무대 위에 남겨서 엔딩을 맞도록 하는 연출이 남은 자들에게 보내는 따뜻한 시선 같아 뭉클했고, 쓸쓸할 수 있는 엔딩 후에 바로 이어지는 신나는 커튼콜은 언제나처럼 위로가 됐다. See you, Billy. 


2013/9/11 Les Miserables 19:30
* Cast 
Daniel Koek (Jean Valjean)
Tam Mutu (Javert)
전나영 (Fantine)
Carrie Hope Fletcher (Eponine)
Anton Zetterholm (Enjolras)
Rob Houchen (Marius)

공연 전 날에 살펴보니 앞에서 4번째 줄 좌석이 남아 있어서 레미즈는 좋은 자리에서 봐야지 싶어 표값 좀 썼더니 정말 좋은 자리였다. 장 발장이 계속 내 쪽에 와서 노래를 하고, 에포닌을 껴안은 마리우스의 눈물까지 보여. 

역시나 명곡으로 가득한 레미즈. 어쩌면 명곡이 끝나면 또 명곡, 또 명곡, 또 명곡....인지! 배우들도 모두 다 노래 실력이 훌륭해서 듣는 내내 귀가 즐거웠다. 꼬마 코제트와 가브로쉬의 노래 실력도 훌륭했으니! 몇몇 배우들 얘기부터 하면, 장 발장 역의 배우는 젊은 시절부터 노년까지의 연기가 매우 자연스러웠고, 노래도 흠잡을 데 없이 하더라. 굽슬거리는 금발 머리가 처음엔 약간 어색하게 느껴졌던 에포닌도 참 좋았고, 스웨덴 출신이라는 앙졸라 역의 배우도 눈이 가더라. 마리우스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특징 없는 배우들만 모아놓는 것이 트렌드인가... 마리우스는 앙상블과 섞일 때마다 누가 마리우스였는지 알아보기 힘들었는데, 그게 마리우스의 미덕인가 싶기도 하고; 코제트는 노래는 잘 하는데 아주 인상적이진 않았다. 

제일 마음에 걸렸던 건 팡틴... 동양계 배우가 팡틴 역으로 나오길래 이것은 레아 살롱가가 무너뜨려준 장벽인가 싶은 생각이 살짝 스쳤는데, 노래는 무척 잘하지만 감정 표현이라든지 외모가 팡틴과 어울리지 않아 내내 거슬렸더랬다. 우선 너무 어려보이는 것부터가 문제였고, 그다지 매력적이거나 산전수전 겪은 듯 처참해보이지도 않아서... 게다가 단 한 명의 동양 배우라서 눈에 워낙 잘 띄다 보니 앙상블에 섞여 나올 때마다 죽은 팡틴이 왜 살아 나왔나 싶어 감정이 흐트러졌다. 공연 후 어떤 배우인가 싶어 찾아보니 한국계 네덜란드 배우라고... 동족(?)으로서 응원하고 싶지만, 팡틴으로는 아니었던 것 같아...

오랜만에 관람하는 레미즈여서 기대가 컸는데, 결론적으로는 조금 아쉬웠다. 엄청나게 폭주하듯 극은 드라마틱하게 흘러가고, 각각의 배우들도 저러다가 혼절하지 싶을 정도로 온힘을 다하는 게 보이는데, 얼마 전 들은 누군가의 말처럼 '감정이 너무 과해서 덕이 부족한' 느낌이 들었달까. 중간중간 연출되는 코믹 릴리프 같은 장면들도 너무나 도식적이어서, 공식에 맞추어진 고전적인 뮤지컬의 한계도 생각해보게 되고. 

그나저나 작곡가도 프랑스 사람이고, 초연도 파리에서 있었는데 어째서 레미즈는 영미권 작품화되어버린거지? 프랑스어로 공연되는 제대로 된 뮤지컬 좀 보고 싶다. 작년 파리에서 본 [1789 Les Amants de la Bastille]의 아픈 기억이 되살아나네;; 정말 내 생애 최악의 공연 중 하나로 손꼽을 수 있는 프랑스산 뮤지컬이었지...

2013/9/12 Once 14:30

음악의 힘. 영화만으로도 충분한 걸 굳이 무대로 옮겨왔나 싶었는데, 동료의 추천으로 관람했고 놓치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다. 무척 잔잔하지만 굉장히 뚝심 있는 작품이랄까. 원작과 내용은 전혀 다르지 않지만 음악가들이 계속해서 등장하며 막을 진행시키는 연출이 참 깔끔하다. 기본 무대 장치 변동 없이 진행되고, 공연 전과 인터미션 때는 무대 위 펍에서 관객을 상대로 음료를 판매하기 때문에 무대에 올라갈 수 있는 유일한 공연이 아닌가도 싶다. 공연 시작 전에 펍의 음악가들이 자기들끼리 계속 이런저런 연주를 하기 때문에 무대와 관객석, 공연 시작 전후의 경계가 흐릿하다. 

무엇보다 실제로 곡 작업을 한 원작의 뮤지션들보다 훨씬 노래를 잘 하는 배우들이ㅡ악기를 수준급으로 다루면서 노래마저 뛰어나고 연기도 좋은 배우들은 뭐하는 사람들인가 싶어 검색해보니 역시나 그냥 배우가 아니라 싱어송 라이터면서 연기까지 하는 만능 엔터테이너들이었어ㅡOnce의 노래를 다 부른다고 생각하면 되기 때문에 귀가 즐겁다. 기타줄이 끊어지도록 에너지를 발산하던 '남자'의 모습이 잔상에 남는다. 

Edgar K.

11-20   

[1789 Les Amants de la Bastille] 그거 혹시 나랑 본 거 아니었어? 바스티유 어쩌구가 제목이었던 걸 기억해. 나는 그 공연의 반 이상을 자면서 봤서 별로 할 말이 없지만. 언어를 못 알아듣는 건 둘째치구 관객을 확 끌어당기는 매력이 없었던 것 같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