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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중독

잡담, 2007/01/15



판의 미로 - 오필리아와 세 개의 열쇠 (2006)

Pan's Labyrinth 
7
감독
길예르모 델 토로
출연
이바나 바쿠에로, 더그 존스, 세르지 로페즈, 마리벨 베르두, 애리아드나 길
정보
판타지, 드라마 | 스페인, 멕시코, 미국 | 113 분 | 2006-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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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번역문이기는 하나 깍듯한 어조의 서간문을 읽고 나니 다소 과장된 듯한 서간체가 잠시 입에, 혹은 키보드를 두들기는 손끝에 배어버렸습니다. 어설픈 경어는 가증맞은 구석이 있어 불필요한 감상을 배제한 간결체로 글을 쓰고 싶지만 어쩌겠습니까 얄팍한 감상의 결정체, 그게 바로 저인것을요. 

이상하게 잠이 오지 않는 밤입니다. 새벽이 깊어갈수록 오히려 정신이 맑아집니다. 저녁식사 후 마신 커피 때문일까요? 그렇다면 참으로 희한한 일입니다. 평생 카페인 때문에 잠 못들었던 적은 진하디 진한 베트남식 커피를 마신 그 날 딱 하루뿐이었는데. 

사실 지금 당장 제게 필요한 것은 십자 드라이버. 십자 드라이버만 있다면 어이없이 부서진 탁상용 램프와 오랫동안 멈춰있던 탁상시계를 고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 그러고나면 잠이 들 수 있을 것도 같습니다. 내 소유물이, 그것도 구입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물건이 망가졌다는 건 토마토 네 개를 만원 주고 사는 것 만큼이나 마음상하는 일이거든요. 

하루를 이틀처럼 꽉꽉 눌러산 지 나흘째. 덕분에 뻗어버렸지만 이야깃거리들과 생각할 거리들은 더욱 늘어나고 있습니다. 어젯밤엔 조지타운에서 친구와 함께 [판의 미로]를 보았습니다. 국내 개봉 직후부터 소문이 자자하길래 내심 궁금했던 차, 잔혹한 장면이 있다는 경고도 불사하고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한 탓인지 잔인한 장면들도 그럭저럭 참아낼 수가 있었습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했고, 사용된 소재나 장치를 굳이 해석하려 들지 않아도 될만큼 메시지가 분명한 영화지만 오랜만에 극장에서 본 영화에 대한 잡담 정도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른 건 다 제쳐두고, 이 영화에서 제일 행복한 장면과 제일 슬펐던 장면에 대해서만 이야기하고 싶지만 쓰다 보면 이런저런 잡담이 늘지도 모르겠어요. 그러니 스포일러를 피하고 싶으신 분들은 여기쯤에서 시선을 거두어주시는 게 좋겠습니다. 

제일 행복한ㅡ사실 행복이라는 단어를 이 영화에 빗대어 사용한다는 것 자체가 역설적이지만ㅡ장면은 단연 벼랑 끝에 몰린 심정으로 제 목에 칼을 쑤셔 넣을 준비가 된 메르세데스에게 찾아온 '구원'입니다. 칼로 목을 그으려던 순간 총성과 함께 말을 타고 달려온 동생과 게릴라. 아, 안 그래도 영화가 끝날 때까지 줄곧 곤두서있던 신경이 툭 하고 끊어지는 것만 같았어요. 만약, 메르세데스가 죽었더라면, 그녀에게 아무런 구원이 찾아오지 않았더라면, 저는 너무나도 처참한 마음으로 영화관을 나섰겠지요. 그래요, 마치 기적처럼 메르세데스에게 구원이 찾아들던 그 순간... 진심으로 "나도 구원받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나는 과연 구원받았을까?"라는 의문을 품을 여력도 없었습니다. 그저 내게 구원이 얼마나 절실한가를 다시금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죠. 

제일 슬펐던 장면은 죽어가는 오필리아에게 자장가를 불러주며 꺼이꺼이 흐느끼던 메르세데스. 그렇네요, 그러고보니 제일 행복했던, 아니 안심이 되었다고 해야 더 옳을 듯한 장면에도 제일 슬펐던 장면에도 메르세데스가 있었습니다. 지하 세계로 돌아간 모아나의 공주는 어미와 아비 곁의 제자리로 돌아갑니다. 한편 지상에서는 무참히 피를 흘리며 마지막 숨을 몰아쉬는 오필리아가 메르세데스의 품안에서 죽어갑니다. 이런 식으로 영화는 끝까지 오필리아의 환상과 모아나 공주의 귀환의 경계를 모호하게 넘나듭니다. 모호한 경계만큼이나 양가적인 감정이 엎치락뒤치락합니다. 오필리아의 죽음이 정말 숭고한 것인지, 아니면 남은 자들이 감당할 수 있도록 숭고화된 것인지 간단히 결론을 내릴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오필리아의 죽음이 제일 슬펐던 것은 단지 죄없는 여자아이가 죽었기 때문은 아니었습니다. 오필리아를 끌어안고 우는, 살아 남아 있는 메르세데스 때문이었어요. 불경하게도 죽은 오필리아보다 살아있는 메르세데스 때문에 가슴이 더욱 미어지는 것 같았습니다. 깊이 상처 입은 메르세데스, 자신의 한 부분이 검게 죽어버린 듯한 모습으로 오필리아를 껴안고 우는 장면이 지나가고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까지 저도 숨죽여 흐느꼈습니다. 오필리아는 단지 육체를 잃은 것이라고 생각해보아도 슬픔은 잦아들지 않습니다. 요정을 믿지 않는 메르세데스는 오필리아의 죽음을 육체의 상실로만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영화를 보고 한 가지 의아한 구석이 있어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감독의 인터뷰를 보게 되었습니다. 감독은 이 영화에서 제일 용감한 사람은 잔인한 세계와 맞서기 위해 판타지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는 오필리아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제게는 메르세데스가 제일 용감하게 여겨졌습니다. 요정도 판타지의 세계도 믿지 않는 여자가 맞서야 하는 현실의 잔혹함, 죽은 자를 품에 안고 자장가를 부르고 또 계속해서 잔혹한 현실을 살아가야만 하는 메르세데스... 오필리아의 죽음은 굉장히 마음이 아픕니다. 하지만 그 죽음 후에도 계속될 메르세데스의 삶은 더욱 마음이 아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