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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션중독

내가 사랑한 장면

2005. 12. 28.

아만다네 집에서 저녁을 먹고 < Much Ado about Nothing >을 보았다. 어디에서 비롯한 자신감이었는지 전문가 수준은 아니어도 셰익스피어를 꽤나 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왜 이 작품이 익숙치 않은걸까. 우리말로는 <헛소동>으로 번역된 이 작품. 

요즘 나는 매일 한 편꼴로 영화를 보고 있는 듯 하다. < North and South >, < Wives and Daughters >, < 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 >, < Mansfield Park >, < White Christmas>, < Much Ado about Nothing >. 아직도 멜로디가 작성한 '꼭 봐야 하는 영화 목록'에는 지워나가야 할 영화가 수두룩하다. 돌아가기 전까지 최소한 이 목록에 적어 둔 영화는 봐야 한다고 멜로디가 강조 또 강조하곤 하는데, 멜로디네 홈 씨어터 장비와 넓은 평면 티비가 나를 단단히 버려놓은 것 같다. 곧 이 넓은 평면 스크린과도 이별을 고해야 할 터. 

브룩의 열혈 추천으로 < Much Ado about Nothing >을 보게 되었지만, 사실 나는 문유님의 글로 먼저 이 영화의 한 장면을 만났었다. 오늘 이 영화를 보면서 나는 무엇보다도 문유님이 사랑했다는 그 장면을 가슴 졸이며 기다렸다. 직접 보지도 않은 영화의 한 장면이 이미 내 머릿속에 재현되어 있던 탓인지, 상상했던 것과는 조금 달랐지만 여전히 좋았다. 유쾌하면서도 흐뭇한 웃음을 흘리게 되는 바로 이 장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장면은 무얼까. 

<오만과 편견>에서 다아시가 엘리자베스에게 처음 청혼하는 장면. 안절부절 못하는 다아시의 모습은 몇번이고 돌려봐도 싫증이 나지 않는다. < North and South >에서 마가렛이 면 공장에 들어서던 순간 눈송이처럼 날리던 그 목화솜 장면도 두고두고 기억이 날 거고. < The Importance of Being Earnest >에서 두 명의 어네스트가 수려한 기타와 피아노 연주로 이루어 내는 세레나데 앙상블도 결코 잊을 수 없다. Lady, come down!을 노래하는 그 두 남자들의 모습이란! <귀를 기울이면>에서 세이지가 바이올린을 켜고, 시즈쿠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할아버지와 친구들이 돌아와 함께 연주를 하는 장면도 너무나 사랑한다. <노팅힐>에서 휴 그랜트가 사계절을 걷는 장면도. 따뜻한 방 한 구석에서 담요를 둘둘 말아쥐고 친구와 내가 좋아하는 장면들을 이야기하며 밤을 샐 수 있을 만큼 생각하는 장면들이 많다. 

하지만, 가장 사랑하는 장면은 무얼까.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벅차고 행복해지는 그런 장면은 무얼까. '가장'이라는 단어에는 무릎을 꿇고 마는 나지만, 꼭 찾아내고 싶다. 사랑하고 사랑해마지 않는 그런 장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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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2/29  delete

귀를 기울이면>에서 세이지가 바이올린을 켜고, 시즈쿠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을 때 할아버지와 친구들이 돌아와 함께 연주를 하는 장면도 너무나 사랑한다. <노팅힐>에서 휴 그랜트가 사계절을 걷는 장면도. -> 이건 정확하게 일치하는 걸..^^

문유2005/12/30  delete

놀러와서 좋은 글 많이 읽고 가요. North and South는 지금 많이 보고 싶어하는 시리즈인데, 벌써 보셨군요 ^^

소리2005/12/30  delete

와앗, 문유님! 무척 반가워 버선발로 뛰어나왔습니다. :) 문유님께서 좋은 글이라고 하시니 민망하기만 합니다. 때때로 문유님 블로그에 가서 읽었던 글을 읽고 또 읽으면서 제가 얼마나 감동 받는지 모르실 거예요. 읽을 때마다 마음이 덜컹 흔들리고, 때로는 숨죽여 흐느끼는 속울음을 울게 되고. The closed book이 다시 열려서 얼마나 기쁘던지요. 연말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시고 기쁜 새해 맞으세요. 이쁜 따님도 모두 다 건강한지.

소리2005/12/30  delete

North and South 는 저는 책은 못 읽어봤고 BBC 시리즈로 먼저 접했는데요. 친구가 North and South 파티를 열어서 오후부터 늦은 저녁까지 네 에피소드를 반나절에 왕창 몰아서. <두 에피소드-저녁식사-남은 두 에피소드>의 형식의 파티였어요. 마지막 결말은 지나치게 로맨틱해서 좀 불편하지만--친구들도 책의 결말이 훨씬 좋다고 열변을 토하고--완성도도 높고 아주 잘 만들어진 영화예요. 알고 보니 매우 최근작(2004년)이더라고요. 문유님도 보시면 좋아하실 것 같아요. 헌데, North and South에서 Thornton역을 맡은 리차드 아미티지가 뭇 여성들에게 콜린 퍼스의 미스터 다아시와 비교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 점에 대해선 동의할 수 없습니다. 히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