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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 데이즈/DC 2005.8~2007.8

그믐처럼 몇은 졸고, 2007/02/25

해야 할 일은 쌓아두고 마냥 잡담을 늘어놓고 싶은 토요일 밤, 지금 하려는 이야기는 [인생은 무정한 남편이어라]와 크게 다르지 않은 맥락에 놓여있다. 

요전번에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인용했던 milkwood님의 표현을 다시 한 번 빌어오면,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그 사람에 대해서 무언가를 말해주던 시기"와 "무라카미 하루키를 좋아한다고 말하는 게 꺼려지던 시기"가 있었다. 그 모든 시기를 지나온 지금에도 검색창에 몇 글자 넣고 두들기면 적당히 귀여운 사진과 적당히 고운 색, 적당히 깜찍한 폰트로 꾸며진 그의 소설 발췌문이 쏟아져 나온다. 

무슨 연유인지 하루키 삐딱선을 타고 있었던 나는 '봄날의 새끼곰처럼 너를 좋아한다'거나 '한밤 중 기적 소리만큼 너를 사랑한다'는 표현이 가소로웠다. 아마도 삐딱선을 타기 전에는 단 한 순간이었어도 이처럼 의외성이 담긴 표현에 소위 감동이라는 것을 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어머, 봄날의 새끼곰처럼 너를 좋아한다니 어쩜 이렇게도 사랑스러운 표현이 다 있을까 하고. 허나 상습적인 하루키의 이러한 비유법이 어느 순간 가벼이 여겨졌다. 달콤하지만 속빈 강정처럼.

아름다운 비유(이는 좋은 비유나 훌륭한 비유와 동의어가 아니다)는 의아하고 미묘하지만 심상을 자극하여 그 의미를 육감으로 이해하도록 하는 것이 아닐까. 곽재구의 [사평역에서]의 한 대목 "그믐처럼 몇은 졸고"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대합실 밖에는 밤새 송이눈이 쌓이고/흰 보라 수수꽃 눈시린 유리창마다/톱밥 난로가 지펴지고 있었다/그믐처럼 몇은 졸고/몇은 감기에 쿨럭이고/그리웠던 순간들을 생각하며 나는/한 줌의 톱밥을 불빛 속에 적셔두고/ 모두들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나 백석의 시, [여승]의 "나는 불경(佛經)처럼 서러워졌다" (女僧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쓸쓸한 낯이 녯날같이 늙었다/나는 佛經처럼 서러워졌다) 와 같은 표현처럼.

허나 모를 일. 이러다가 마음이 말랑한 날에는 봄날의 새끼곰 타령을 하게 될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