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샐러드 데이즈/DC 2005.8~2007.8

KRAMERBOOKS & afterwords, 2007/01/29

뉴욕이나 파리 같이 '익사이팅' 혹은 '로맨틱'한 도시들에 비하면 디씨는 참 소박하고 조용하고 건조하다는 생각을 많이 합니다. 하지만 이런 디씨에도 구석구석 찾아보면 정 붙일 공간이 숨어 있고, 오래토록 곱씹게 될 풍경이 있습니다. 오늘은 크레이머북스 (Kramerbooks) 라는 재밌는 서점에 대해서 이야기해드리려고 해요. (제가 무슨 이야기 할머니도 아니고. 후훗. 그러고보니 저 어렸을 적에 옛날 얘기하는 거 너무 좋아해서 친구들이 이야기 할머니 같다고 해 준 적이 있네요.)

크레이머북스는 듀퐁 써클ㅡDupont Circle: 프랑스식으로 발음하자면 뒤뽕에 가깝겠고 여기식으로는 듀판~에 가깝지만 저는 꿋꿋하게 듀퐁이라 표기합니다ㅡ에서 약 2-3분 거리, 코네티컷 애비뉴 1517번지에 있는 서점이에요. 사실 헌책방이나 온라인 서점을 애용하는지라 겉장에 표시된 가격에다 세금까지 붙인 어마어마한 돈을 내고 이 곳에서 책을 사는 일은 극히 드물지만, 그래도 듀퐁 써클에 갈 때면 꼭 한 번씩은 들르게 되는 서점입니다. 반스 앤 노블(Barnes & Noble)이나 보더스(Borders)처럼 큰 체인점이 아니라고 해서 전혀 무시할 수 없는 이 서점에는 요리, 여행, 소설, 철학, 종교, 정치, 사회, 경제 등의 다방면의 주제를 섭렵하는 서적들이 질서정연하게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요전번에 수업 때문에 급히 책이 필요해서 여기저기 큰 서점을 쥐잡듯 뒤지고 다녀도 못 찾았던 후쿠야마의 [강한 국가의 조건 (원제: State-Building: Governance and World Order in the 21st Century)]은 기대도 안 했던 크레이머북스에서 아주 간단히 구했던 전력이 있습니다. 

반스 앤 노블이나 보더스 같은 미국 대형 서점이 매장 내 스타벅스나 자체 커피샵을 들여놓기 훨씬 이전에 서점과 카페를 접목시켰다는 것이 크레이머북스의 특이점인데요. 뭐, 자기들 말로는 국내 최초 카페 겸 서점이라고 하네요. 1976년에 처음 문을 열었으니까 햇수로만 따져도 30년이 넘어가네요. 저는 책 구경만 하러 갔었지 거기서 뭘 먹어본 적은 없는데 오늘은 스티브 아저씨와 알렉스와 함께 선데이 브런치를 먹으러 갔어요. 사실 브런치라고 하기엔 이미 늦어버린 점심시간이었지만요. 주말에는 따로 브런치 메뉴를 준비해서 오후시간까지 서빙을 하는데, 제일 먼저 자리에 안내받자마자 미니 머핀이 한조각씩 나오고 조그만 유리잔에 신선한 오렌지즙을 짜서 만든 주스와 역시 귀여운 머그에 레귤러 커피가 나옵니다. 브런치 메뉴 치고 가격이 좀 비싸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무래도 저 혼자 굳이 브런치 챙겨 먹으러 갈 일은 없을 듯 하지만, 서점 구경하다가 허기지면 카페에 자리 잡고 앉아 책 읽으면서 라즈베리 크럼블 같은 거 하나 시켜서 커피랑 마시면 딱 좋을 것 같아요. 

테이블 나기를 기다리면서 [Cooking for Mr. Latte]를 좀 읽었는데, 이거 무척 재밌더군요. 안 그래도 aithria 언니가 이 책 얘기한 적 있었고, 아만다도 이번에 놀러와서 이 책 얘기하던데, 앞에 몇 챕터 읽어보니까 킬킬거리며 읽다가 내키면 소개된 레시피로 요리하면 딱 좋을만한 책이더군요. 그래서 도서관에 대출 신청해놓았지요. Cooking은 문제없는데 for Mr. Latte 쪽이 문제긴 합니다만...